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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권세를 이김 / 고전15:20-58

2010.05.01 12:09

이상봉 조회 수:9085

사망 권세를 이김 / 고전15:20-58

  

58.부활 생명으로 말미암는 승리와 하나님의 나라의 완성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것은 우리를 건지고 살리기 위한 것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최종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온전히 세우는 것이 최종 목적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사람을 살리는 일이 선행될 따름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선다는 것은 하나님이 온 세상 특히 사람을 다스리시게 되는 것을 말한다. 지금 세상 임금은 마귀이다. 이것은 마귀가 사람을 지배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은 세상이 합법적으로 마귀의 소유가 되어 있다는 말은 아니다. 단지 실질적으로 마귀가 다스리고 있다는 말이다. 마귀는 하나님의 나라를 불법적으로 강탈하여 불법으로 왕 노릇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아무 권리도 없는 그가 현재 하나님의 소유를 제 것처럼 부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어떻게 세상 임금이 되었는가? 사람을 사로잡음으로써이다. 세상 만물은 사람 아래 있으며 사람을 중심으로 모든 것이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우주의 중심은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마귀는 사람만 사로잡으면 모든 것을 자기 뜻대로 움직일 수 있다. 그래서 마귀는 다른 아무 것에도 손대지 않고 오직 사람을 사로잡음으로써 세상을 자기 것으로 획득했다.  

그러면 마귀는 어떻게 사람을 사로잡았는가? 적어도 분명한 사실은 마귀가 사람을 물리적으로 즉 강압적으로 굴복시켜서 사람이 원치 않는데도 억지로 마귀의 종이 되게 만들 수는 없었다는 것이다. 하나님도 심지어 그렇게 하시지 않는다. 그것은 사람에게 자유 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으로 생명과와 선악과를 선택적으로 먹을 수 있게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어떤 존재로 지으셨는지를 말해주는 것이다. 사람은 근본적으로 자유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지으신 사람이 자기의 기쁜 뜻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섬기기를 원하셨다. 그럴진대 하물며 마귀가 억지로 사람을 지배한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이 스스로 마귀에게로 들어갔다는 말인가? 물론 그것도 아니다. 오늘날 거의 모든 사람들이 실제로는 마귀의 종이 되어서 마귀가 시키는 대로 하고 있다. 그들은 거짓된 생각과 악행과 범죄로 말미암아 마귀를 충실히 섬기고 있지만 그 어느 누구의 의식 속에도 내가 마귀를 섬기고 있다고 하는 생각은 없다. 그들은 단지 자기 뜻대로, 자기 원하는 대로 그런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마귀는 바로 거짓말과 속임수로 사람을 사로잡고 있는 것이다. 마귀가 억지로 사람의 의지를 꺾고 사람의 동의를 얻지 않은 상태에서 사람을 굴복시켜서 사람으로 범죄하고 마귀의 종으로 살게 하는 것도 아니며, 사람이 스스로 마귀에게 나아와서 그를 기쁘게 하기 위해 죄악된 삶을 사는 것도 아니다. 오직 마귀가 사람을 속인 것이며 사람은 마귀에게 자기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속고 있는 것이다.

마귀는 사람의 생각 속에 거짓말과 망상이라는 독을 집어넣어 사람을 자기 뜻대로 부리고 있다.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을 섬길 종이며 그 생명대로 살아야 할 자이지만 마귀는 그것과 반대되는 거짓된 생각, 잘못된 생각을 사람에게 불어넣어서 사람으로 자기의 마땅한 운명을 거부하게 만들고 살지 못할 길, 망할 길로 가게 만드는 것이다.

영의 요구를 거부하고 육신의 정함 없는 욕구대로 산다는 것은 자동차가 운전자의 조종대로 가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나아가는 것과 같다. 그리고는 그것이야말로 자유고 행복이고 영광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은 문자 그대로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마귀의 속임수에 말려들어서 사람이 일단 생각을 잘못 가지기 시작하여 삶이 육신의 정욕에 매이게 되면 그 다음에는 마귀가 모든 것을 일일이 간섭하고 조종하지 않아도 모든 것은 다 마귀의 뜻대로 착착 움직여진다. 쾌락을 하나님보다 부모 형제보다 더 사랑하게 되면 그 다음은 저절로 죄가 나오고 그 다음은 사망이 오게 되는 것이다. 욕심이 사람의 마음을 지배하면 사람은 그것을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고 남을 해치며 각종 범죄를 저지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면 사망을 낳게 되는 이 과정은 자동적이다. 여기에는 마귀가 일일이 간섭하고 지도할 필요가 전혀 없다. 문제는 처음에 생각이 잘못 들어가는 것이다. 그것만 되면 나머지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저절로 일어나게 된다.

이처럼 사람이 마귀에게 속아 하나님을 멀리하게 되자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정죄와 심판을 받아서 죽고 말았다. 정녕 죽으리라고 하신 말씀은 아담 이후의 모든 인류에게 적용되어서 모든 사람은 반드시 죽게 되었다. 아담은 범죄 후 바로 죽지 않았지만 결국 죽을 운명이 되었다.

이 죽음 곧 죽을 운명은 최후에 숨이 끊어지는 순간에 가서야 비로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동안 항상 적용되었다. 즉 삶에 사망의 세력이 드리워져 몸이 조금씩 약화되어 마침내 죽는 것이다.

타락 후 몸은 하나님의 그릇이 아니라 마귀의 그릇이 되었다. 그러므로 몸은 더 이상 하나님의 생명 공급과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사망의 몸, 죽을 몸이 되었다. 사망의 몸이라는 말에는 최후에 죽는 운명을 지닌 몸이라는 의미만 아니라 죽어가는 몸, 죽을 지경이 된 몸이라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여기서 나타난 현상이 무엇인가? 바로 사람이 죽기를 무서워하여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게 된 것이다. 생명에의 능력과 소망이 없음으로 인해 사람의 마음 속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 늙고 병드는 것에 대한 두려움, 삶에 대한 두려움이 나타나게 되었다. 그것은 당연한 것이다. 이제 하나님의 생명에서 끊어진 모든 인류는 살아 있는 동안에도 항상 죽기를 무서워하며 사는 것을 힘겹게 생각하게 되었고 그 결과 목숨의 종이 되고 생활의 종이 되게 되었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일단 사람이 마귀의 거짓말을 받아들이면 그 다음에는 모든 일이 마귀의 뜻대로 자동적으로 되어진 것처럼 일단 사람이 죽기를 무서워하여 일생의 종이 되게 되면 그 다음에도 역시 모든 것이 마귀의 뜻대로 착착 진행되게 된다. 이제 마귀는 사망 권세라는 무기를 가지고 사람을 위협하기만 하면 세상을 자기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된 것이다.

죽기를 무서워하면 생명 주는 분이신 하나님께로 가까이 가야 할 터인데 사람의 생각이 잘못되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반대로 행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안 죽으려고 발버둥치며 그나마 남은 생명을 보존하고 즐기기 위해 육체의 정욕과 쾌락을 위하는 쪽으로 나아간다. 이것은 몸을 위하고 생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망하게 하고 단축시키는 것이지만 마귀에게 단단히 속아 있는 인생들은 그것을 알지 못한다.

육체를 위하는 것이 단지 육체의 생명을 보존하고 몸을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도구로 간수하는 것이라면 육체를 위하는 것이라고 반드시 마귀가 좋아할 일이 없지만 사람들이 육체를 위하는 것은 그것을 넘어서 육체의 정욕과 쾌락을 위해 온 힘을 들이는 쪽으로 위하기 때문에 그 결과가 방종과 타락과 범죄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다 마귀의 뜻을 실현하는 것이고 마귀를 왕으로 모시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구원, 하나님의 회복은 진리로 사람의 잘못된 생각을 바로 잡는 일에서 시작되며 또한 사람 안에서 죄와 사망을 몰아내고 그로 인해 사망에 대한 두려움을 몰아내는 일에서부터 시작되게 되는 것이다.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는 말씀은 구원의 최종 완성이 그리스도인의 몸의 부활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5장과 히브리서 2장은 마귀의 최고 최종 권세가 사망 즉 사망의 위협(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이 사실을 아시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더 이상 우리가 사망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도록 만드셨다. 이로 인해 이제 마귀의 사망 권세는 무력해졌다.

사망은 어떻게 왔는가? 죄로 말미암아 온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에게 있어서 사망은 절대적이며 영원한 것이며 어떻게 할 수 없는 운명적인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하고 있다. 그 생각은 적어도 죄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동안에는 사실이다. 그러나 사망은 어디까지나 죄로 인해 온 것이므로 죄가 사라지면 사망도 사라진다. 죄란 어떤 사물이 하나님이 정하신 길대로 가지 않는 것이다. 시계가 시간을 나타내는 길로 가지 않고 마구 뱅뱅 돌거나 가만히 있으면 그것이 바로 죄다. 그 결과는 무엇이겠는가? 폐기처분이다. 그것이 바로 사망이다. 잘 돌아가는 기계는 결코 부수지 않는다. 사망은 오직 죄로 인해 온 것이다. 그러므로 죄가 사라지면 사망도 사라진다.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은 근본적으로 회복되었으며 오늘 우리는 비록 작지만 그 회복을 실제로 누리고 있다. 우리의 생각은 바로 잡혀 가고 있으며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길대로 조금씩 회복되어가고 있다. 이것이 바로 사망이 사라지고 영생이 지배하는 세계가 열려가고 있다는 징조이다.

지금 우리는 타락으로 인해 이미 망가지고 죽어가는 몸을 입고 있다. 이것은 아담의 흔적이다. 그래서 우리는 결국 죽을 것이다. 이것을 바울은 썩어질 것으로 심고 욕된 것으로 심고 약한 것으로 심고 육의 몸으로 심는다고 표현했다. 그러나 현재 우리 삶은 마치 씨를 심는 것처럼 심는 것이다. 거두는 것이 썩는 것이고 욕된 것이고 약한 것이라면 절망이지만 심는 것이 그런 것이라면 문제는 다르다. 우리는 이런 것을 심는데 거두는 것은 썩지 않을 것이고 영광스러운 것이고 강한 것이며 신령한 것이다.

우리 안에는 두 가지 성질이 있다. 하나는 껍데기인데 그것은 썩어질 것이고 욕된 것이고 약한 것이다. 그러나 또 하나는 하나님의 생명이다. 이것이 우리 약한 몸을 심었을 때 영광스럽고 강한 몸으로 나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이 생명을 주신 주님을 찬양한다.

첫 사람인 아담은 산 영 즉 단지 살아 있는 존재였으나 마지막 아담이자 둘째 사람인 예수 그리스도는 살려주는 영 즉 생명 주는 분이요 생명의 원동력이다. 그 안에 있는 우리는 반드시 다시 산다. 그리고 그것은 영광스럽고 완전한 몸으로 다시 사는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다시 사는 것은 첫 사람 아담이 땅에서 났으므로 흙에 속한 자의 운명(죽을 운명)을 지닌 것과 달리 둘째 사람이신 그리스도는 하늘에서 나셨으므로 하늘에 속한 자의 운명 곧 영원한 생명(부활 생명, 영생)을 지닌 분이기 때문이다.
 

부활의 순서 (살전4:15-17)

1.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 곧 죽은 성도들이 먼저 부활함

2.주님 재림 때 살아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부활의 몸으로 변화됨. 그리하여 먼저 부활한 앞의 성도들과 함께 주님께로 이끌리게 됨
 
3.그 나머지 사람들이 부활함. 악인의 부활에 대해서는 성경에 분명한 언급이 없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악인들은 완전히 멸절(滅絶)되어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성도들은 천년왕국 전에 부활하고 악인들은 천년왕국이 지난 후에 부활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성경의 전체적인 흐름으로 볼 때 성도든 악인이든 주님의 재림 때 함께 부활할 것으로 보인다.


부활은 주님의 재림 때 일어난다. 주님의 재림은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오신 초림과는 달리 사람들을 심판하기 위해 오시는 것이며 또한 이미 구원한 자기 백성을 데리러 오시는 것이다. 주님의 재림은 세상 나라를 멸하고 그의 나라를 완전히 세우기 위해서 오시는 것이며 이때 마귀와 죄와 사망과 세상의 모든 것이 다 멸망 받아 사라지게 될 것이다.

특히 바울은 마귀와 그가 다스리는 이 세상의 가장 큰 특징이자 권세인 사망이 그 날에 완전히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힘주어 말하고 있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 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 여기서 바울은 부활 때 우리가 ‘사망 권세’를 이길 것이라는 구원의 약속(사25:8)이 확실히 성취되는 것을 보게 될 것을 말하고 있다.

이어서 바울은 “사망아 너희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희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고 말함으로써 율법과 죄와 사망의 관계에 대해 말하고 있다.

사망 권세(세력)는 죄가 사람을 지배할 때 힘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이고 죄는 율법이 사람을 지배할 때 힘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은 우리에게 율법이 더 이상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는 새로운 세계를 가져왔다.

율법이 죄를 불러오는 것은 사람과 율법 곧 사람과 하나님의 말씀(생명)이 하나가 아니어서 그 둘 사이에 괴리가 있기 때문이다. 죄란 율법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알아도 그대로 살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과 그대로 행할 수 없는 무능의 간격만큼 ‘어김’과 ‘범함’ 곧 죄가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를 믿는 우리에게 부활 생명을 불어넣음으로써 우리를 하나님께 대해 무능한 자가 아니라 능력 있는 자로 만들었다.

부활 생명은 우리를 죄에 대해서는 죽은 자요 하나님께 대해서는 산 자로 만들었다. 그러므로 율법은 이제 우리에게 죄를 불러오는 마귀의 권능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생명으로 그리고 생명을 살려내고 생명을 더 풍성케 하는 성령의 도구로 작용한다.

이처럼 더 이상 율법이 죄의 권능으로 작용되지 못하게 됨으로써 죄는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게 되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사는 한 즉 그리스도의 이 부활 생명으로 사는 한 죄는 우리를 더 이상 지배하지 못한다. 따라서 사망도 우리를 지배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사망은 죄의 삯이요 죄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죄는 사망의 쏘는 것 즉 사망을 가져오는 독침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가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 안에 있는 이 그리스도의 생명 역시 우리 안에 있는 사망을 이기고 승리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은 현재에 있어서 우리 죽을 몸에 생명을 불어넣어 살리며 또한 마지막 날에 우리 죽은 몸을 영광스러운 몸으로 살리게(변화시키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자. 그것은 우리의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다고 했다. 그는 에베소에서 복음을 전할 때 맹수와도 싸우고 추위와 굶주림과 신체의 약화와 사람들의 핍박과 멸시와 싸웠다. 그는 날마다 죽노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죽지 않았고 그때마다 승리했다.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자기 속에 역사하는 부활 생명 때문이었다.

부활 생명으로 인해 바울은 미래에 그가 누릴 영광스러운 삶에 대한 소망을 가질 수 있었고 그것은 그를 절제하게 만들었고 인내하게 만들었고 범사에 여유롭게 만들었다. 또한 그 생명은 그를 당면한 여러 시험과 환난으로부터 실제적으로 그를 보호하고 이기게 만들었다. 그의 마음과 육체가 환난 속에서도 강건하게 살아남았던 것은 부활 생명이 그의 죽을 몸 가운데 역사했기 때문이다.

부활 생명은 결국 신자에게 세 방면으로 역사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부활 생명은 신자의 마음과 육체 그리고 죽은 몸에 역사하는 것이다. 구원은 예수를 믿고 거듭나는 순간 영이 소생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장차 몸이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화하는 것으로 완성되듯이 부활 역시 마음의 평안과 안식, 기쁨으로부터 시작하여 죽을 몸이 하나님의 보호를 입고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사용되는 체험을 거쳐서 그 몸이 장차 죽음에서 부활함으로 말미암아 영광스럽게 변화되는 것으로 완성될 것이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써 당신의 영원한 생명을 부어주심으로써 우리로 이 소망을 갖게 하신 주님을 찬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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