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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부활의 의미 / 고전15:1-8
 

55.부활 생명으로 삶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부활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 까닭은 고린도교회 안에 어떤 사람들이 부활이 없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부활이 없다면 이 세상에서의 삶뿐이므로 사람들은 모두들 육체의 정욕대로 먹고 마시며 행동하려고 할 것이며 선을 행하든지 죄를 짓든지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으며 다만 뒤탈만 없다면 아무 상관없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실제로 고린도교회 안에 그런 종류의 방종이 있었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와 우리의 부활에 대해 말하게 된 것이다.

고전15장은 부활과 관련하여 상당히 많은 사실을 말하고 있기 때문에 한 시간에 그 모든 내용들을 다 다룰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 말씀들을 몇 번에 걸쳐 상고해야만 할 것 같다. 오늘은 그 중에서 먼저 주님의 부활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하자. 주님의 부활은 우리의 구원 복음의 핵심 내용이며 바울 역시 이 부분으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로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너희가 만일 나의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이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라”(15:1,2)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전한 복음의 내용 곧 사람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복음의 내용은 무엇인가?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15:3,4)  바로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이 복음의 핵심 내용이라는 것이다.

바울은 구원의 방법을 별도로 전한 것이 아니라 단지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전했을 따름이다. 그런데 그 안에 구원 방법이 제시된 것이다. 우리의 구원은 전적으로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기초를 둔 것이다.

먼저 구원은 주님의 죽으심에 기초를 둔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 생각해 보자. 우리의 구원은 ‘죄 처리’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 왜냐하면 죄를 처리하지 않으면 즉 죄를 용서받지 못하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님은 우리를 자기 안에 포함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주님은 우리 옛사람을 대표하여 죽으심으로써 우리의 모든 죄와 모든 것을 완전히 끝내버리셨다. 그가 죽으신 것은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죽으신 것이며 타락한 우리 옛 사람의 운명과 과거 현재 미래를 다 끝내버리신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구원받은 것이다. 그런데 성경은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죽음만 믿으면 된다고 말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부활도 믿어야 한다고 말한다. 사도행전을 보면 사도들은 주님의 죽으심보다는 오히려 주님의 부활을 더 열심히 증거하였다.

왜 죽음 뿐 아니라 부활도 증거되어야 했는가? 그것은 죽음과 부활이 하나로 연결된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에게 있어서 죽음은 부활의 과정이었으며 부활은 죽음의 결과였다. 이 둘은 시작과 완성의 관계에 놓여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주님의 죽음을 언급할 때마다 동시에 주님의 부활을 언급하는 것이다.  

부활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부활이 주님의 죽으심의 의미를 확실하게 증언해 준다는 것이다. 부활이 없었다면 주님의 죽음은 어떤 성질의 죽음인지 분명하게 드러날 수 없었을 것이다. 주님이 보통 사람들처럼 자기 죄로 인해 혹은 어쩌다가 사람들의 손에 억울하게 죽으신 것이 아니라 인류의 죄를 처리하기 위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스스로 죽으셨다는 사실을 당신은 무엇으로 아는가? 바로 부활을 통해서이다. 주님의 죽음이 헛된 죽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른 승리의 사역이었다는 사실은 그의 부활을 통해서 입증되었다.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라”(행17:31)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롬10:9)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님이 죽으신 것을 믿는 것만으로는 구원을 얻지 못하며 주님이 죽음 가운데서 부활하신 것을 또한 믿어야 구원을 얻는다.  

부활은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의 생명이 어떤 생명인지를 분명하게 증거하는 놀라운 역사(役事)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하신 일이다.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일(없앨) 수 있을 줄로 생각하고 죽였다. 그러나 그는 영생의 하나님이어서 죽지 않는 분이었으며 따라서 잠시 죽일 수는 있었지만 영원히 죽일 수는 없었다.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박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행2:23,24)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자를 부인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주기를 구하여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로라”  (행3:14,15)  

하나님은 주 예수님을 죽음 가운데서 다시 살리심으로써 그가 결코 보통 사람이 아니며 인류의 구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임을 만인에게 공포하셨다.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이스라엘로 회개케 하사 죄 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를 삼으셨느니라.”(행5:30,31)  “우리를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하나님이 산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거하게 하셨고 저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거하되 저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행10:42,43)

그러나 부활이 아무리 명백한 사실일지라도 그것을 보지 못한 오늘 우리에게 있어서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은 분명히 사람의 상식을 넘어서는 것이다. 사실 오늘 시대의 사람들 뿐 아니라 주님 당시의 사람들에게 있어서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주님의 부활을 목도한 사람들 예컨대 주님의 무덤을 지키던 로마 군병들이나 주님이 죽으시던 순간에 사람들이 무덤에서 부활한 것을 직접 본 사람들조차 주님의 부활을 분명하게 믿지 못했다.

그러므로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성령님의 감화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가 믿은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한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엡2:8)

사도들은 언제나 성령의 능력 안에서 주님의 부활을 증거하였는데 그 때 그들의 말을 듣던 무리들은 다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큰 은혜를 얻어서 주님의 부활을 믿고 부활 생명으로 사는 세계로 들어갈 수 있었다.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얻어”(행4:31,33)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한 성령님의 감동이 절실히 필요하다. 우리의 신앙은 주님의 부활의 바탕 위에 서 있는 것이다.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의 모든 것이 다 불확실한 것이며 믿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아울러 부활 진리로 가득 차 있다. 신약 성경 뿐 아니라 구약 성경도 부활 진리에 대해 말하고 있다. 히브리서 기자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기꺼이 하나님께 제물로 바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부활을 믿었기 때문이라고 증거하고 있다.(히11:17-19)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 강을 건넌 것 역시 부활의 모형이다. 또 아론의 마른 지팡이에서 싹이 난 것 역시 부활을 예표하는 것이다.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고전15:3,4) 바울은 여기서 ‘성경대로’ 즉 구약 성경의 증거대로 주 예수님이 부활하셨다고 증거하고 있다.  

주님의 부활의 의미를 또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 보자. 주님은 우리를 위해 단지 ‘죽으셨을’ 뿐 아니라 또한 ‘부활’하셨다. 그것은 그가 ‘우리를 위해’ 즉 ‘우리 죄를 처리하기 위해 죽으셨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한 것이다. 앞에서 살펴본 것이 그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부활의 또 다른 의미를 간과해서는 안된다. 바울은 고전15:3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라고 말한 뒤에 다시 17절에서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라고 말했다. 15:3에서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죄의 관계에 대해 말했고, 15:17에서는 그리스도의 復活과 죄의 관계에 대해 말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죄의 문제가 해결되었는데 또 17절에서 죄 문제가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해결되는 것처럼 말한 까닭이 무엇인가?

주님의 죽음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우리의 죄를 처리하는(사해주는) 것이고, 또 하나는 (죄 짓는) 우리 자신을 처리하는 것이다. 죄 즉 죄값은 사형의 형벌을 받으면 해결된다. 주님은 우리를 대신하여 사형을 당하시고 지옥으로 내려가심으로써(?) 우리의 죄책(罪責)을 면제하셨다. 그러나 죄인(罪人) 자체가 그대로 남아 있다면 죄는 계속 나올(생산될) 수밖에 없으며 이것은 결국 완전한 죄의 처리가 안되게 되는 것이다. 주님의 보혈로 인해 신자는 죽은 후에는 구원을 받을지라도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에는 (하나님의 용서는 받지만) 여전히 죄는 짓는 사람으로 남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죄값만 치르면 되는 것이 아니고 ‘죄인을 근본적으로 처리하는 일’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상징적으로 말할 때 주님의 보혈은 우리의 죄를 처리했고 주님의 십자가는 우리 옛 사람 자체를 처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흘리신 피가 소중한 것처럼 그가 십자가에서 우리를 포함하여 죽으신 사실 자체도 매우 소중한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말살이요 폐기처분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부활은 여기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 부활은 주님이 흘리신 피가 보통 피가 아니고 우리의 죄를 사하는 보혈임을 입증하는 것이다. 이것이 앞에서 상고한 것이다. 그러나 더 나아가서 부활은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죽음이 우리의 죄를 사할 뿐 아니라 우리 자신을 폐기처분한 것을 의미하는 것임을 입증함과 동시에 그 부활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음을 입증한다.

따라서 부활은 우리가 더 이상 죄인으로 있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영광스런 아들로 새로 일으켜졌음을 증거하는 것이다. 더 이상 정죄를 받지 않거나 심판을 받지 않는다는 정도가 아니라 더 이상 죄의 종이 아니며 더 이상 범죄하는 자가 아니도록 만든 것이다. 이것은 매우 놀라운 역사이다. 바울은 말한 것은 만일 주님의 죽으심만 있고 부활이 없다면 우리는 ‘여전히 죄 용서를 못받는다’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참으로 하나님은 주님의 부활로 인해 우리를 죄(심판) 가운데서 건지셨을 뿐 아니라 또한 ‘사망’(죽은 일) 가운데서도 건지셨다. 이것은 얼마나 확실한 일인가! 부활로 인해 하나님은 우리를 죄 문제를 확실하게 하신 것이다. 다만 과거의 죄를 용서하는데 그친 것이 아니라 더 이상 범죄하지 않는 거룩한 생명으로 다시 살리신 것이다. 주님은 우리를 단지 죄의 형벌에서 건지신 것이 아니라 죄와 사망의 법에서 건지사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아들로 살게 만드신 것이다.

우리는 오늘날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대해 말하는 이상으로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서도 소리 높여 외쳐야 한다. 오늘날 부활에 대한 증거는 점점 약해지고 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기적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이 믿기 쉽고 또한 그것은 희생과 사랑과 봉사의 상징이기 때문에 세상도 그것에 대해 많이 말하며 사람들도 쉽게 감동을 받지만 부활은 세상 상식과 조화되기 어려운 이상한 일이므로 사람들은 그것에 대해 힘있게 말하려 하지 않으며 또 귀 기울여 들으려 하지 않는 것이다.  

주님의 부활은 주님이 소유한 생명의 특성과 능력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우리는 이 주님의 부활 생명을 오늘 우리 안에 소유하고 있음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그러므로 주님만 부활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도 부활할 것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주님이 그의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다는 사실 뿐 아니라 그의 부활 승천과 성령 강림으로 인해 지금 우리 안에 생명으로 거하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하며 또한 그 생명의 능력으로 인해 우리는 더 이상 죄에 거하지 않고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아들로 살 수 있음을 항상 믿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의 살으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으심이니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롬6:4-11)

오늘날 사람들이 승리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주님의 죽으심만 알 뿐 주님의 부활에 대해서는 깊이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실제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어디서 그런 사실이 드러나고 있는가? 바로 사람들이 환경의 어려움을 만날 때 그것을 부활 생명으로 처리하지 못하고 다만 고통 가운데서 불평하고 좌절하는데서 드러나고 있다. 주님의 부활 생명 곧 우리 안에 있는 이기는 생명은 우리로 모든 시험과 환난을 능히 이기고 역경 가운데서도 주님을 찬송하게 만들 수 있다.

많은 신자들이 시험은 현실적인데 비해 주님의 말씀과 약속은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처한 육신적 환경이 현실이고 생생한 만큼 하나님의 약속과 그리스도의 역사 역시 현실이고 생생한 것이다. 사탄의 시험과 공격만 엄중한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거하시며 우리를 돕는 주님 역시 엄연한 현실이며 엄중하고 확실한 것이다. 부활 생명은 성경 안에 갇혀 있는 가공적인 능력이나 비현실적인 관념과 이론이 아니라 그것을 믿는 자에게 강력하게 역사하는 실제적 능력이다.

사람들은 부활 생명의 능력을 그다지 믿지 않지만 하나님은 그것에 대해 자신이 있으시기 때문에 그의 자녀들이 마귀의 시험을 받는 것 즉 역경에 처하게 되는 것을 종종 허락하신다. 하나님이 그것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우리 안에 거하시는 그리스도가 얼마나 현실적이며 그 생명의 능력이 얼마나 확실하고 실제적인가를 우리로 체험케 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이 확실히 보장하시는 일에 대해 우리가 왜 두려워하겠는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 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엡1:17-22)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또한 그로부터 받은 부활 생명의 능력을 믿고 범사에 담대하고 당당하게 대처해야 한다. 죄를 이기는 문제에 있어서도 한 번 두 번 시도해 보고 포기하지 말고 이기는 생명의 능력을 믿고 끝까지 도전해야 한다. 또 한 두 번 정도 죄를 정복하고 승리한 뒤 그만 두지 말고 계속해서 죄를 정복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생명의 능력을 힘입어 죄를 이기고 자기를 의의 병기로 드리는 일을 몇 번 시도해 보다가 포기하고는 그리스도의 승리도, 생명의 능력도, 성령의 도우심도 다 소용없고 그것은 단지 이론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주 예수님이 세상에서 그렇게 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능력을 믿음으로써 피 흘리기까지 죄와 싸우고 죽기까지 순종하려는 노력을 해보지도 않은 채 단지 몇 번 시도해 보고는 ‘죄는 너무나 강하며 마귀의 시험은 너무 세며 육신은 너무 약하다’고 탄식하며 도로 옛 사람의 자리로 (육신의 체질대로 사는 자리로) 돌아가 버리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믿음이 없는 것이다. 즉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부활을 안다고 하지만 피상적일 뿐 깊이 알지 못한다. 사람들은 갈보리 산에서 십자가를 지신 주님은 바라보지만 부활하사 이제 자기들 안에 생명으로 계시는 주님은 바라보지 않는다.

우리가 성경의 증거와 앞서 간 형제들의 증거와 체험을 통해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안에 현실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이 부활 생명으로 인해 우리는 작은 시험이나 큰 시험, 작은 죄나 큰 죄를 다 이길 수 있으며 작은 헌신이나 큰 헌신을 다 능히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주님의 부활을 믿고 또한 우리 안에 역사하는 부활 생명을 믿음으로 범사에 승리를 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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