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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의 부활 / 고전15:12-19

2010.05.01 12:07

이상봉 조회 수:8798

죽은 자의 부활 / 고전15:12-19


 
고린도전서 15:12-19,35-38

57.부활의 실재

15:1-11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 말한 바울은 12절부터 그리스도의 부활에 바탕을 두고 믿는 자(죽은 자)의 부활에 대해 말한다. 그는 부활에 대해 세 가지 사실을 함께 연결하여 말했다. 첫째는 죽은 자의 부활이고 둘째는 그리스도의 부활이고 셋째는 우리의 믿음이다. 그는 말하기를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의 부활도 없었을 것이요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은 헛것이 될 것이라고 했다.

죽은 자는 그것으로 끝이 아니고 다시 살아난다는 이것은 하나의 창조 원리이다. 하나님이 이러한 원칙을 정하지 않으셨다면 죽은 자가 다시 사는 일이란 절대로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원칙을 정하셨다. 만일 하나님이 그런 원칙을 정하지 않으셨다면 그리스도의 부활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 ‘죽은 자의 부활’이라는 하나의 정해진 창조 원칙에 따라 일어난 일이었다.

삶과 죽음의 모든 문제, 우주의 모든 일은 다 하나님의 정하신 원칙에 따라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는 사람이 나면 또한 결국 죽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원칙이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여기서 히브리서 기자는 ‘나면 죽는다’는 것만 정하신 원칙이 아니고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는 것’ 그래서 혹은 천국으로 가서 영생하고 혹은 지옥으로 떨어져서 영원히 고통을 당한다는 것도 정해진 원칙이다.

그러므로 죽은 자의 부활은 기적이나 특별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 때부터 정하신 우주의 법칙의 하나이며 당연한 일이다. 다만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다시 오셔서 그러한 부활을 모든 사람에게 적용하시기까지는 그 일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부활이 놀랍고 신기한 일이 되었을 따름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사람 가운데서는 처음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 되었지만 결국 하나님은 그와 같이 모든 사람을 죽은 후에 다시 살리실 것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부활이 아니라 ‘어떠한 부활이냐’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살기 위한 영광의 부활이면 좋지만 마귀와 함께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지옥에 떨어지기 위한 부활 즉 ‘두 번 죽기 위한 부활’(계20:14,21:8)이면 절망인 것이다.  

바울은 부활의 실재(사실)를 믿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15:35-49의 말씀을 통해 세상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부활의 실례를 들어 보인다. 그는 농부가 씨를 뿌려서 곡식과 열매를 거두는 것을 통해서 부활을 실증하였다.

생명체의 현상은 부활이 일상적인 원리로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밀은 그 줄기와 잎과 열매를 어떻게 보존하며 확대하는가? 그 씨를 통해서이다. 농부는 단지 씨를 뿌릴 따름이지만 그 씨 안에 밀의 생명이 있음으로 인해 그것이 자라면 밀의 형체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씨는 분명히 밀이 아니며 밀의 생명을 보존하고 있는 하나의 원리일 뿐이다. 그나마 땅에 묻혀서 썩고 변형되는 과정을 거친 후에 밀로 자라게 된다.

사람이 생산되고 그 종족을 보존하고 확대하는 원리를 보면 밀보다 더 정교하고 기이하다. 밀의 씨는 밀알이다. 그것은 제법 눈에 보이고 크다. 그러나 밀에 비해 훨씬 크고 복잡한 구조를 지닌 사람의 경우는 그 씨가 밀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다. 하나의 세포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분열하여 마침내 이 복잡한 모양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되는가? 그것은 세포 안에 유전자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는 생명체에는 유전자가 있음으로 인해 처음에는 그 최종 형체가 전혀 없더라도 나중에 완전한 형체를 가지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유전자는 생명체의 씨이며 바깥의 큰 몸을 만들어내는 속의 원리이다.

그러나 유전자는 인간의 몸을 만들어내는 생명의 원리이기는 하지만 그보다 더 궁극적인 씨가 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히11:3)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생명이다. 이 하나님의 생명은 유전자 이상으로 확실한 유전자이다. 그 안에 있는 부활 생명은 사람을 오늘 우리가 지니고 있는 이런 외형의 몸을 가지게 만들뿐 아니라 우리로 본성으로 하나님을 알게 하며 하나님과 하나로 연합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아들로 살게 만들며, 또한 사는 동안에 하나님의 능력과 정신을 힘입어 몸이 생명을 누리게 만들며, 또한 죽은 후에 다시 부활하게 만든다. 이것은 곧 사람의 씨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씨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안에서 사람의 형상(몸)을 가져올 뿐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가져오는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과학을 발달시켜 복제 인간이 태어나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다음 달에 최초의 복제 인간이 태어난다고 한다. 이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인간의 생명적 원리만을 가지고 완전한 인간의 몸을 재현하게 됨을 의미한다. 이것은 결국 인간 스스로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졌고 모든 만물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졌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우리는 사람 속에 자기가 아직 겪어보지 못한 일에 대한 관념과 지식이 어렴풋하게나마 있는 것을 종종 느낀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귀신을 알며 두려워한다. 귀신을 본 것도 아니고 체험한 것도 아닌데 귀신에 대한 관념이 있고 그것을 두려워한다. 누구든지 캄캄한 밤에 음침하고 외진 곳에 가면 본능적으로 두려움이 생기는데 그 두려움은 대개 귀신이 나타나서 자기를 해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물론 지금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사탄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귀신의 실재도 그의 능력과 역사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을 들은 적도 본 적도 없는 어린 아이조차 귀신 이야기를 하면서 두려워하는 것은 어떻게 된 일인가? 이것은 사람의 관념 속에 자기의 체험을 넘어서는 원초적인 지식이 어느 정도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과 연관된 것이지만 사람들 안에 있는 종교성도 매우 본능적이고 보편적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신 우리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신을 믿는 사람은 매우 많다. 고도로 문명이 발달하고 지식화 된 현대에 있어서는 신의 존재를 믿거나 의지하는 사람이 이전보다 적어졌지만 과거에는 신을 믿지 않는 사람이란 거의 없었다. 그것은 누가 가르치거나 권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본능적으로 그렇게 된 것이다. 이것은 사람들 안에 신에 대한 관념이 있고 하나님이 있다는 사실에 대한 본성적 지식이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런 지식은 어디서 온 것인가? 어떻게 이런 관념을 가지게 된 것인가? 그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생명을 받을 때 그 생명 안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진리를 아는 지식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아담의 생명 안에는 진리를 아는 지식이 있었던 것이다. 비록 그가 타락함으로써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을 잃은 것이 사실이고 자기 속에 있던 하나님 아들의 마음과 능력과 지식을 상당 부분 상실했지만 그래도 그것이 어느 정도 희미하게나마 남아 있어서 사람의 본성과 본능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이 본성 안에는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지식과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한 지식도 포함되어 있다. 고대 사회의 거의 모든 사람들은 영혼불멸의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죽은 후의 삶이 없다고 분명하게 주장하는 사람이나 민족은 거의 없었다. 우리 조상들도 사람이 죽으면 조상신이 되어 집안을 여전히 돌보며 화복을 주장한다고 믿었고 이런 지식과 믿음은 오늘날까지 상당 부분 계속 되어 지금도 사람들은 형식적이나마 죽은 자에 대해 제사를 드리며 섬기고 있다. 고대 이집트나 중국 같은 곳에서 미라를 보존하고 무덤을 거대하고 화려하게 꾸민 것은 죽은 자의 부활을 기대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상과 지식은 억지로 누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사람 안에 있는 본성에 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다.

이처럼 우리 안에는 부활을 비롯하여 사람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대해 하나님이 정하신 길을 아는 본성적 지식이 있다. 이것은 불확실하고 희미한 것이어서 하나님의 명확한 계시의 말씀을 필요로 하지만 그래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부활이 없고 심판이 없다는 것은 생명의 본성적 가르침을 거스르는 억지이다.

인간 복제까지 하는 이 마당에서 우리는 세상의 외형만 보고 그것을 가져온 원리인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에 대해서는 무지한 채로 있어서는 안된다. 하나님이 정하신 생명의 원리를 거스려 사는 것 곧 하나님을 믿지 않고 부활을 믿지 않고 심판을 믿지 않고 그 진리대로 살지 않는 이런 삶이 얼마나 무모하고 불가능하며 반생명적인지를 깨닫지 않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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