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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권면 / 고전16:12-23

2010.05.01 12:12

이상봉 조회 수:8239

마지막 권면 / 고전16:12-23
 

 
1.아볼로가 고린도교회로 가지 않으려고 함

“형제 아볼로에 대하여는 저더러 형제들과 함께 너희에게 가라고 내가 많이 권하되 지금은 갈 뜻이 일절 없으나 기회가 있으면 가리라”

아볼로가 고린도교회로 가지 않으려고 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그 안에 그런 부담이 없었으므로 바울로부터 형제들과 함께 그들을 방문해 보도록 많이 권면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가지 않으려고 했던 것은 사실이다.

우리는 신실한 형제들 안에서도 서로 다른 생각이 있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같은 일에는 같은 뜻을 품고 같은 마음이 있어서 다 같은 행동이 일어나야 정상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약하고 생각과 지식이 제한적이어서 항상 같은 생각과 같은 행동으로 연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만일 각 사람이 자기 고집과 야망으로 인해 그렇게 행동하고 있다면 우리는 일깨워주며 그것을 타파해야 한다. 그러나 각자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자기가 그렇게 깨달아서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즉 받은 은혜가 그러하여서 그렇게 행동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억지로 일치시키려고 할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각 사람 안에서 더 많이 역사하셔서 성령 안에서 자연스러운 연합과 일치가 이루어지도록 기다려야 한다.

사람을 터무니없이 높이 보아서 헛된 기대를 가지는 것도 사탄의 속임수에 빠진 것이고 사람을 터무니없이 낮게 보아서 멸시하고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는 것도 사탄의 속임수에 빠진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그릇이며 그의 영광을 담을 도구이다. 그의 아들이며 종이며 그 형상으로 지음 받은 자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형상은 어디까지나 형상일 뿐 본체는 아니다. 본체는 하나님 자신이다. 아들은 어디까지나 아들일 뿐 아버지가 아니다. 아버지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그냥 형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이며 그냥 아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하나님의 사람, 그리스도 안에 있는 형제는 누구인가? 그들은 하나님의 사람이며 하나님으로부터 난 사람이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그만큼 존중히 여기며 귀히 여기는 동시에 하나님이 아니요 사람이며 또한 부활한 완전한 몸으로 사는 사람이 아니요 그것을 기다리며 소망 중에 사는 약한 그릇임을 알아서 형제를 대할 때 조심하여 받들고 소망 중에 기다려야 한다.

아볼로나 베드로나 바울이나 다 귀한 주님의 사자들이지만 사람들은 그들에게서 많은 차이를 보았다. 그리고 그들 간에도 차이를 느꼈다. 그러나 그것은 절대적인 가치를 가진 차이가 아니라 사람의 약함과 무지로 인한 착각이고 그다지 가치 없고 의미 없는 차이일 뿐이다. 그러므로 그 차이에 대해서는 너그럽게 바라보며 여유있게 기다릴 줄 아는 마음이 필요하다.
 

2.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할 것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여라”

교회는 세상을 대하여 남자의 권위를 가지고 서 있다. 그것은 교회가 세상에 대해 생명 주는 자의 위치에 서 있기 때문이다. 세상은 죽었고 도움과 부축을 받아야 할 자이고 교회는 살았고 그리스도의 넉넉한 생명을 나누어줄 위치에 서 있다. 그러므로 교회가 세상을 보고 무엇을 바라거나 알아주기를 원하거나 그들에게 판단을 구하거나 해서는 안된다. 물론 우리가 육신적으로는 세상의 어떤 사람들에 비해 약하고 부족한 자일 수 있으므로 누구에게든지 배울 것은 배우고 순종할 것은 순종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적인 관계에서 그런 것이고 세상이라는 집단을 놓고 볼 때는 그들은 우리에 비해 어린아이이고 죽은 자이고 병자이다. 그러므로 세상을 넘어서서 세상 위에 영적으로 권위를 가지고 군림하며 다스리며 섬기는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한다. 우리 것으로 세상을 다스리고 먹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그의 것을 가지고 세상을 다스리고 살리는 것이다.


3.형제들끼리 서로 문안하고 귀히 여길 자를 귀히 여기고 복종할 자에게 복종하고 알아 줄 자를 알아줌

“아시아의 교회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아굴라와 브리스가와 및 그 집에 있는 교회가 주 안에서 너희에게 간절히 문안하고 모든 형제도 너희에게 문안하니 너희는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본래 그리스도인은 사람의 인정과 칭찬, 사람으로부터 오는 영광을 추구하지 않는다.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인정과 칭찬을 구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영광을 추구할 따름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옳다 인정하시고 하나님이 잘했다 칭찬하시면 만족하지 사람으로부터 대접받고 상 받고 칭찬과 인정을 받는 것은 우리의 목표가 아니다.

분명히 일하는 사람 자신의 태도는 이래야 한다. 그러나 일하는 형제를 대하는 다른 형제들은 어떻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바로 바울이 여기서 말하고 있는 바와 같이 주의 일을 힘쓰는 자를 귀히 여기고 대접하며 그 사역에 협력하고 그 권위에 복종해야 한다.

땅에 있는 하나님의 사람은 장차 하늘에서 함께 있게 될 형제와는 달라서 그 육신의 연약함으로 인해 사탄의 시험에 시달리며 넘어지고 흔들리기 쉽다. 그러므로 서로 도와주고 세워주지 않으면 안된다. 때로 하나님은 사람을 고독한 가운데 처하게 하여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도록 역사하신다. 그러나 형제들이 서로를 대할 때 무정하고 이기적이고 냉랭해서는 안된다. 서로 사랑하며 서로 돕고 서로 격려하며 서로 존중하고 서로 복종함으로써 자신이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의 세계 안에 서 있음을 느끼게 만들어야 한다.

약한 중에 형제들이 서로를 돕는 도움 가운데 하나가 바로 형제의 존재와 사역을 인정하고 도우며 복종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의 도움과 사랑을 의지하고 기대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움과 사랑을 느끼도록 통로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땅에 있는 동안 항상 하나님의 사랑과 인정과 칭찬과 격려를 필요로 한다. 그것을 누구를 통해서 공급받는가? 기도하다가 혹은 말씀을 묵상하다가 성령의 감동으로 직접 받을 수도 있지만 대개는 형제들을 통하여 자연스럽게 공급받는 것이다.

우리는 신실하고 사랑하는 형제가 하는 한 마디의 위로의 말과 격려의 말, 한 마디의 진리에 대한 가르침에 크게 고무되며 깨달음을 얻는다. 더 나아가서 사랑하는 형제가 책망과 권면의 말을 할 때도 그것은 크게 다가와서 우리 마음에 회개에 이르는 갈등과 근심을 불러오며 마침내 진리로 다가가게 만드는 것을 느낀다.


4.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저주 아래 있음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지어다 주께서 임하시느니라”

주님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이미 한 번 오셨고 곧 다시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 오실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어떤 강한 왕이 가벼운 전쟁을 치르기 위해 원정에 나섰는데 그 동안에 왕이 없다고 왕을 업신여기고 멸시하는 무리들이 등장했다면 그들은 저주와 멸망 아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곧 왕이 다시 돌아와서 그들을 멸할 것이기 때문이다. 왕이 다시 와서 그 땅을 다스린다는 것은 정해진 일이며 그러므로 그를 사랑하지 않는 자가 저주 아래 있다는 사실은 확실한 것이다.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에 그 종 열을 불러 은 열 므나를 주며 이르되 내가 돌아오기까지 장사하라 하니라 그런데 그 백성이 저를 미워하여 사자를 뒤로 보내어 가로되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 됨을 원치 아니하노이다 하였더라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돌아와서 은 준 종들의 각각 어떻게 장사한 것을 알고자 하여 저희를 부르니 그 첫째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주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나이다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또 한 사람이 와서 가로되 주여 보소서 주의 한 므나가 여기 있나이다 내가 수건으로 싸 두었었나이다 이는 당신이 엄한 사람인 것을 내가 무서워함이라 당신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나이다 주인이 이르되 악한 종아 내가 네 말로 너를 판단하노니 너는 내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엄한 사람인 줄을 알았느냐....그리고 나의 왕 됨을 원치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 하였느니라” (눅19:12-27)

이 비유에서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은 주님을 인정치 않고 염두에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를 왕으로 생각하고 주인으로 생각하여 그의 말을 명심하여 실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이 붙은 사람으로서 말로 주님이 싫다거나 밉다거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속의 깊은 마음과 생각에서 주님이 주인으로 비중 있게 자리 잡고 있지 못하다면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그의 삶과 행동에서 주님의 가르침, 주님의 뜻과 전혀 동떨어진 목표를 세우고 그런 일만 한다면 그는 주님이 안중에 없는 자이며 주님을 멸시하는 자이다.

이런 사람은 주님이 돌아오지 않기를 바랄 것이다. 주님이 영원히 오시지 않음으로써 세상이 자기 뜻대로 굴러가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반드시 다시 오신다. 그래서 그 생명대로 그 뜻대로 산 사람은 받으시고 그렇지 않은 자들은 버리실 것이다.

이것은 영적 전쟁이다. 믿음으로 사느냐 생명대로 사느냐 아니면 감정대로 몸과 마음이 이끌리는 대로 사느냐 하는 싸움이다. 부르심 받은 자에게는 하나님이 그를 부르실 때 그 속에 불어넣으신 소망과 목표와 그에 따른 부담이 있다. 우리는 이것을 따라 행해야 한다. 이것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이것을 소멸하는 것이 곧 성령을 소멸하는 것이다.(살전5:19) 사탄은 우리 안에서 이 생각과 이 부담이 뭉그러지도록 계속 시험을 던진다. 여기에 속지 말아야 한다.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생각의 문제가 아니라 진리를 사랑하는 것이요 그의 말씀, 그의 계명(가르침)을 사랑하고 존중히 여겨 그대로 행하는 것이다. 말씀을 우리 삶의 유일한 길로 여겨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다.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범사에 실제로 하나님을 의지하며 두려워하며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사랑은 관념이 아니라 실제적인 것이다. 우리가 돈을 소중히 여기고 자식을 소중히 여기는 것처럼 그렇게 주님을 실제로 범사에 소중히 여기는 것이 바로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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