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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생명 안에 있는 바울 / 고전15:8-10
 
 

고린도전서 15:8-10, 31-34

바울은 훌륭한 그리스도의 사도였다. 신약 성경의 절반을 기록한 사람이요 이방 세계에 복음을 전하여 초대 교회의 기초를 놓은 사람이다. 그는 실로 많은 일을 했다. 그리고 인격적으로도 그리스도를 깊이 닮은 사람으로 변화되는 체험을 했다. 그는 어떻게 그렇게 사역할 수 있었고 어떻게 그렇게 거룩한 삶을 살 수 있었는가? 그 자신은 이렇게 답한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그렇다면 바울에게 임한 하나님의 은혜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어떤 은혜를 받았기에 그처럼 사역할 수 있었고 그처럼 인격이 변할 수 있었는가? 그가 받은 은혜는 여러 측면에서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고린도전서 15장을 읽으면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한 가지 사실은 그가 그리스도의 부활을 보았고 그로 인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부활 생명의 실체를 보았다는 것이다. 이 지식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 바로 바울에게 임한 큰 은혜 중 하나임은 분명하다.

그는 15장 마지막 부분에서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고 말했다. 이런 권고로 보아 그 자신이 범사에 견고하며 흔들리지 않으며 주의 일에 힘쓴 것은 ‘그의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확실히 아는 지식’ 때문이었음이 분명하다.

확신이 없으면 당당하고 자신 있게 일을 하기 어려우며 계속 일을 해 나가는 것도 어렵다. 확신은 어디서 오는가? 보는 데서 온다. 분명하게 보지 못하면 확신을 가질 수 없다. 바울이 만일 부활 생명의 세계 즉 변화된 몸으로 영원히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영생의 세계를 보지 못하고 다만 이 세상과 거기에 붙은 삶 곧 육신의 생명만 보았다면 그는 결코 그처럼 일하지 못했을 것이며 그처럼 인내하고 그처럼 거룩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역과 인격은 일시적으로는 간격이 있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궁극적으로는 일치하는 것이며 따라서 훌륭한 인격이 뒷받침되지 못하는 훌륭한 사역이란 있을 수 없다. 그리고 훌륭한 사역과 훌륭한 인격은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것들을 분명하게 보고 믿는 믿음 위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금생 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금생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내세도 있고 이 육신의 생명과 육신의 삶만 있는 것이 아니라 부활 생명으로 거듭난 영적 생명과 그로 인한 영생(진정한 삶)도 있다는 것이다.

바울에게 있어서 은혜는 두 방면으로 임했다. 첫째 은혜는 누구에게나 그렇듯이 그리스도 자신이다. 그리스도가 오셨고 우리에게 생명의 말씀을 전하셨고 우리를 위해 죽으셨고 우리를 위해 부활하신 것이 다 은혜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역사적 사실은 모든 인류에게 그렇듯이 바울에게도 근본적인 은혜였다. 이것은 객관적인 은혜이다. 모든 인류에게 그리스도는 은혜이다. 그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그가 우리에게 보내진 것이 바로 은혜이다.

그러나 바울에게는 둘째 은혜가 있었다. 그것은 그 은혜가 헛되이 흘려 버려지지 않고 바울 안에서 실제로 생명과 구원이 되었다는 것이다.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그리스도는 만인에게 공개적으로 오셨고 세상의 죄를 위해 죽으셨으나 그것이 바로 자신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고 자기 안으로 깊이 받아들이는 사람은 적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사역도 은혜지만 그것을 생명으로 취하도록 눈이 열리고 마음이 열리는 것이 더 큰 은혜이다.

교회가 서로 싸우고 나누어지지 않고 오직 서로 인내하고 용납하고 사랑하며 하나로 연합되는 것도 부활 생명의 세계를 아는 지식이 있어야 가능하고, 바울이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말한 것처럼 항상 시험과 고난을 당하면서도 진리에서 떠나지 않고 자기를 부인하며 주를 끝까지 위하는 것도 이 생 너머에 있는 영생의 세계를 보는 눈이 있어야 가능하며, 항상 깨어서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않는 삶을 사는 것도 다 부활의 세계를 알아야 가능한 것이다.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죽은 자가 다시 살지 못할 것이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

모든 문제는 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데서 나오는 것이다. 하나님을 참으로 알고 진리를 참으로 알면 당연히 그 지식대로 행할 수밖에 없다. 눈으로 멸망과 지옥의 길을 뻔히 보면서 그리로 갈 사람은 없으며 또 눈으로 생명의 길을 뻔히 보면서 그리로 갈까 말까 망설일 사람도 없다. 참으로 은혜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세계를 마음으로부터 깨닫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부활은 사실이다. 죽은 자가 다시 살아 영광스러운 몸을 입고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은 희망이나 신념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고 있는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스도께서 그 첫 열매가 되어 지금 하늘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천국은 사실이다. 그리고 이 세상 나라는 장차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서 사라지게 될 것이다. 세상 만물과 모든 사람들과 그들의 일과 죄와 마귀가 다 사라지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 계셔서 우리를 지켜보시며 우리를 기다리신다. 우리가 눈 앞에 보이는 세상, 육신의 세계에 매이지 않고 부활의 세계를 보고 소망하며 또 현재 믿음으로 부활 생명을 누리면서 살다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 천국에서 하나님과 영원히 살게 되기를 기다리신다.

우리가 마음을 열고 보면 이 모든 사실은 다 분명하게 보이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관념 속에서만 존재하는 상상이 아니라 엄연히 실제로 존재하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마음을 갈고 닦고 훈련해서 없는 사실도 있는 것처럼 보고 누린다. 이방 종교나 철학의 세계에 깊이 심취한 사람들은 마귀의 속임수에 빠져서 거짓을 붙잡고 있지만 그래도 마치 무엇이나 있는 것처럼 그 속에서 태연히 앉아 있다. 하물며 진리의 세계 안에 있는 우리가 오리무중의 혼란에 빠진 사람처럼 오락가락한다면 그것은 객관적인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주관적인 마음의 문제요 믿음의 문제이다.

사람의 생각, 사람의 눈, 사람의 마음이란 사탄에게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때로 종잡을 수 없는 것이며 믿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엄연한 사실도 보지 못할 수 있고 사실이 아닌데도 사실인 것처럼 믿기도 한다. 봄에 땅에 씨를 심는 사람들은 당연히 가을에 혹은 몇 년 후에 씨가 아니라 곡식이나 나무 열매를 거둘 것을 알고 심는다. 그들은 씨가 어떻게 나무 열매로 혹은 곡식으로 변하는지 알지 못한다. 눈으로 그것을 본 것이 아니다. 그러나 앞에 그런 일이 항상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사실이고 현실이고 생명의 법칙이라고 믿는 것이며 그 지식에 근거하여 조금도 의심 없이 씨를 땅에 뿌리는 것이다.

이것은 곧 우리가 꼭 눈으로 보고 확인해야만 어떤 것을 사실로 현실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이미 우리는 많은 것들에 대해서 비록 눈으로는 보지 못했지만 단지 마음을 엶으로써 그 실체를 보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살아 계심, 그리스도의 오심과 죽으심과 부활, 그리고 그것을 통한 우리의 구원과 영광, 부활 생명으로 살아감으로써 죄를 이기고 승리하는 이 삶도 우리가 마음을 열고 조용히 성령의 가르치심에 귀를 기울이면 다 분명한 현실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여기에 은혜가 있다. 마음을 여는 것은 우리 일이고 그것을 돕는 것은 하나님의 일이다.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시고 우리는 믿는 것이다.

감사한 것은 이 은혜에 대해 말하고 생각하는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라는 객관적 은혜만 누리는 자가 아니라 그것을 깊이 믿고 받아들이도록 돕는 하나님의 은혜를 또한 누리는 자 안에 속해 있다는 사실이다. 마음을 집중하여 사탄의 헷갈리게 하는 시험만 물리치면 진리는 우리의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은혜는 다 우리 것이다. 항상 이 은혜를 구하자. 믿는 것이 가능하도록 볼 수 있게 만드는 은혜, 진리대로만 사는 것이 가능하도록 깨어 있을 수 있게 만드는 은혜를 구하자.

우리도 마지막 날 바울처럼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않았으며 항상 주의 일에 힘쓰는 삶을 살았습니다’ 라고 말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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