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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은사 / 고전12:29-13:13

2010.05.01 11:57

이상봉 조회 수:8696

사랑의 은사 / 고전12:29-13:13
 

48.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은사로 섬김 (2)

우리는 지난 주에 교회 안에는 사도와 선지자, 교사의 일을 하는 것이나 병을 고치고 예언을 하고 능력을 행하는 것이나 다스리고 구제하고 권면하는 일을 하는 등 표나는 은사, 표나는 직분들이 많지만 그 어떤 은사, 그 어떤 직분보다 믿음과 소망, 사랑의 충만이 더 크고 귀한 은사요 직분이라는 것을 생각했다.

믿음으로 충만하고 소망의 정신으로 충만하며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이런 사람들은 그 존재 자체가 교회 안에서 큰 은사요 직분이 된다. 이런 사람의 봉사는 그다지 드러나고 표가 나는 것은 아니지만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세워 온전케 하는데 절대적으로 기여하고 봉사한다. 이 은사들은 그 어떤 은사들보다 근본적이고 기초적이다. 사람들 안에 믿음이 없고 소망이 없고 사랑이 없으면 다른 은사들은 아무 소용이 없다.

예수를 참으로 믿지도 않는 사람들에게 가르침이 무슨 소용이 있겠으며 구제와 병 고침, 다스림이 무슨 소용 있겠는가? 또 주님께 소망을 두지 않고 세상에 마음이 가 있고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그 어떤 은사와 직분이 그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 굳게 설 수 있도록 영향을 미칠 수 있겠는가? 아무 선한 일도 아무 감동적인 봉사도 주님을 믿지 않고 주님을 향한 사랑과 소망이 없는 사람에게는 의미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은사들도 소망하며 교회 안에 그런 모든 은사들이 있기를 간구하지만 무엇보다도 교회 안에 큰 믿음의 용사, 소망의 사람들이 일어나기를 소망하며 간구한다. 또한 우리 자신이 다른 표나는 은사는 없더라도 그런 믿음의 사람, 소망의 사람이 되어 다른 형제들을 격려하고 온전히 세우게 되기를 소망한다.

오늘은 믿음 소망에 이어 사랑에 대해 계속 생각해 보자. 사랑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우리는 아까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모든 은사들 가운데 근본이며 기초가 되는 은사라는 사실부터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바울은 교회의 은사와 직분에 귀천은 없지만 어느 일이 더 기초적이고 근본적인가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음을 계속 말하고 있다. 예컨대 고전12:28에서는 첫째가 사도, 둘째는 선지자, 셋째는 교사, 그 다음에 능력이나 병 고치는 은사나 서로 돕는 것, 다스리는 것, 방언하는 것 등이 온다고 했다.

그리고 14장에서는 특별히 예언이 중하고 가치 있는 은사이니 예언을 말하게 되기를 소망하라고 했다. 이것은 분명히 병 고치는 것이나 방언이나 선행이나 다스리는 은사보다 이 은사들이 더 중요하고 기초적인 은사이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다. 왜 그런 은사들이 더 중요하고 기초적인가? 그것은 이 은사들이 교회에 진리의 초석을 까는 은사들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진리의 터 위에 선다. 그러므로 사도와 선지자, 교사 예언하는 자 등과 같이 그리스도와 그 복음 진리를 전하는 일은 교회의 기초를 놓는 일이다.

그런데 고전13:8에서 바울은 그 귀한 예언도 지식도 다 때가 되면 폐해질 것이라고 말한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진리의 지식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지식으로 인한 봉사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교회에는 그들이 꼭 필요하며 그 봉사가 매우 귀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가장 근본적인 봉사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보다는 믿음과 소망, 사랑이 먼저라는 것이다. 왜? 믿음과 소망, 사랑은 사람 안에 생명을 불어넣음으로써 형제들이 사람으로부터 간접적인 봉사를 받는 것을 넘어서 성령으로부터 봉사를 받도록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믿음의 용사들은 형제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 사람들으로 하여금 사도와 선지자 교사의 봉사보다 훨씬 직접적인 성령의 가르침과 지도를 받게 만든다. 그 어떤 사도의 예언이나 가르침보다 성령님의 가르침과 감화가 훨씬 완전하고 확실하다. 그런 차원에서 예언이나 교사의 은사보다 믿음과 소망, 사랑의 은사가 더 근본적이고 소중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고전13장 끝에서 믿음, 소망, 사랑은 항상 교회 안에 있어야 하며 또 있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는 믿음, 소망, 사랑 간에도 경중의 차이를 두었다. 그는 믿음과 소망, 사랑이 다 귀하지만 그 중에서도 사랑이 제일이라고 했다. 고전13:2에서 그는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더라도...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라고 말했다. 그런데 예언과 비밀과 지식 다음에 그는 놀랍게도 믿음에 대해서 이렇게 언급했다.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믿음조차 사랑이 없으면 소용없다는 것이다.

어째서 그런가? 신앙 세계에서 믿음보다 중요한 것이 어디 있는가? 신자라는 말 자체가 믿는 자라는 뜻이고 신앙 생활이라는 말에서 신앙이 곧 믿음이란 말 아닌가? 그러나 믿음의 은사는 사랑의 은사에 우선하지 못한다. 내가 지금 말하는 것은 ‘믿음’이 ‘사랑’보다 못하다는 것이 아니고 ‘믿음의 은사’가 ‘사랑의 은사’에 우선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말의 차이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말하는 것은 은사요 직분이다. 사랑의 은사 곧 형제들에게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불어넣는 봉사는 믿음을 불어넣는 봉사나 소망을 불어넣는 봉사보다 분명히 더 근본적이다.

우리는 이 순서를 알아야 한다. 병을 고치거나 선행을 하거나 다스리는 일을 하는 것보다는 예언을 하거나 가르치는 일을 하는 것이 더 근본적이다. 그러나 예언을 하거나 가르치는 일보다는 사람들에게 주님을 믿는 믿음을 불어넣고 주님께 소망을 가지게 하는 일이 더 근본적이다. 그러나 그 모든 일의 맨 첫 자리에 사랑이 선다. 사랑이 최우선이고 가장 근본이다. 모든 은사는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되어 그들을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충만케 할 때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은사들이 제대로 전달되어 목적대로 쓰이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사랑은 바로 이런 모든 은사들을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은사인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의 은사가 가장 근본적이고 우선적이라고 하는 것이다.

고린도교회의 문제가 무엇인가? 은사가 부족한 것이었는가? 그렇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그들에게는 많은 은사들이 있었다. 은사들 중 특히 귀한 지식의 은사를 가진 사람들도 상당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여러 귀한 은사들을 형제들에게 제대로 전하여 그들로 몸의 생명을 함께 누리게 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왜 그랬는가? 그것은 그들이 형제를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랑의 마음이 없었으니 제 아무리 좋은 것이 있다 한들 그것을 어떻게 제대로 전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만일 형제를 사랑하여 그를 진심으로 섬기고자 하는 사랑의 마음이 없다면 그 어떤 놀랍고 굉장한 은사라도 첫째, 그것이 봉사로 이어지지 못하며, 둘째, 설사 그것이 봉사로 이어지더라도 그 사람 안에 깊숙이 전달되어 생명을 풍성케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사랑이 없다는 것은 몸에 피가 돌지 않는다는 것과 같으며 신경이 마비된 것과 같으며 도로가 마비되어 양식이 시골에서 도시로 전달되지 않는 것과 같다. 피에는 산소와 영양이 녹아들어 있어서 그것이 몸 안의 모든 지체에게 생명을 준다. 그리고 신경은 머리의 지시를 각 지체에게 전달하여 제 각각 필요한 활동을 하도록 만든다. 그런데 혈관이 막혀 혈액 순환이 안되거나 신경이 마비되어 버린다면 피에 아무리 좋은 영양이 담겨 있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쌀이 창고에서는 넘쳐 썩고 있어도 도로가 마비되어 수송이 안되면 도시 사람들은 굶어죽게 되는 것처럼 아무 좋은 은사들이 있어도 사랑이 없고 섬김의 마음이 없어서 그것이 전달되지 못한다면 그 모든 것이 다 아무 소용도 없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교회 안에는 형제들에게 선행을 독려하는 일보다, 진리의 지식을 전달하는 일보다, 심지어는 믿음을 독려하고 소망을 불러일으키는 일보다 형제들에게 사랑의 마음을 불어넣고 매사에 그리스도의 뜨거운 사랑으로 행하도록 감화를 끼치는 일이 더 급하고 소중한 것이다.

바울은 지식으로 가르치거나 방언을 말하는 것, 심지어 놀라운 믿음까지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했고 더 나아가서 자기에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자기 몸을 불사르게 내어주는 놀라운 선행을 하는 것도 사랑의 생명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면 아무 의미도 없다고 했다. 구제와 희생적 봉사가 어째서 사랑의 열매라고 여겨지지 않고 사랑의 봉사와 대비되었을까? 그것은 그런 일이 사랑의 생명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사람의 생각과 열심으로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며 또 실제로 많은 일들이 그렇게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의 봉사는 ‘사랑의 정신으로’ ‘사랑의 생명으로’ 형제들을 돌보고 선행을 하는 것이다. 같은 선행을 하고 같은 봉사를 해도 그리스도의 사랑의 정신이 그를 떠밀어서 조건없이 제한없이 하나님이 사람을 사랑하신 것처럼 선행을 하고 봉사를 할 때 사람들은 그에게서 단지 봉사의 열매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정신을 배우며 사랑의 생명을 받게 되는 것이다. 결국 이것은 단순한 구제나 선행의 봉사가 아니라 형제들에게 그리스도의 참 사랑을 회복시키며 사랑의 생명을 북돋우는 일을 하는 것이 된다. 이것이 가장 귀하다.

믿음과 사랑, 생명과 사랑의 관계에 대해서는 요한이 잘 증거하고 있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요일3:14)

요한은 요한복음에서 믿음과 생명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그 후에 기록된 요한서신에서는 사랑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는 사랑이 믿음의 증거이며 생명의 증거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생명의 특징은 사랑이다.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로다” (요일3:18,19)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요일4:7-12)

마음의 생각이 그 사람의 신앙의 진실성을 입증하며 이는 곧 사랑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그 사람의 신앙의 진실성을 입증한다는 것이다. 참 믿음에서는 반드시 사랑이 나온다. 형제를 사랑하는 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사랑은 다른 어떤 이유나 조건으로 인한 것이 아니고 오직 그가 주님을 믿고 나와 같은 생명을 가졌다는 이유로 사랑하는 사랑이다. 많은 차이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사랑스럽다는 이 사실이 바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졌으며 참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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