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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의 일 (1) (갈5:19-21) / 2002. 12. 1

2010.05.03 10:03

이상봉 조회 수:6189

오늘은 육체의 일 곧 육신대로 살 때 맺게 되는 열매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하자.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우선 주목할 사실은 육체의 일은 '현저하다'는 것이다. 현저하다는 것은 뚜렷하다는 것이고 '언제나 그렇다'는 것이다. 육체를 따라 살 때 나타나는 현상은 언제나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 .... 등이라는 것이다. 물론 사람이 육체대로 산다고 해서 언제나 죄만 짓고 부도덕한 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육체를 따라 살면 결국 그런 일을 하게 된다. 다른 일도 하지만 그런 일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하는 육체의 일이란 단지 육체가 하는 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육체의 본성적 일 또는 육체대로 살 때 사람이 결국은 하게 되는 일(행위)을 가리킨다.

육체의 일은 현저하다. 아무리 피하고 싶어도 육체대로 살면 틀림없이 하게 되는 일이 있다. 그것이 바로 육체의 일이다. 그러면 왜 육체는 이런 일을 하게 되는 것일까? 왜 육체의 일은 이렇게 현저하며 뚜렷한가? 그것은 육체 안에 사람이 그런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되도록 만드는 어떤 특성과 경향성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즉 육체의 일은 육체의 본성에서 나오는 것이다. 몸(육체)은 이미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다.(롬8:10) 이것은 타락으로 인해 이미 하나님과 진리에 대해 죽은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결코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수준의) 선을 행할 수 없다.
"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 나으뇨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롬3:9-12)
이것이 바로 사람의 본성이고 육체의 실력이다. 그런즉 어떻게 이것을 피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육체의 일은 현저한 것이다.

사람들이 크게 착각하고 오해하는 것 중 하나는 사람의 삶이 육체의 이러한 본성(성질)에 달려 있지 않고 자기 마음(생각)과 의지(원함)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다. 육체가 정욕을 추구하고 그것을 위해 진리를 버리고 죄의 길로 가는 것은 마음의 문제나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이미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정욕과 육신, 죄와 육신, (그 결과로서) 사망과 육신, 이것은 둘이 아니라 하나다. 그것은 이미 한 몸이며 한 운명이다. 정욕이 없어지려면 육신이 죽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길이 없다. 육신이 살아 있는데 정과 욕심만 극복하거나 육신이 살아 있는데 죄만 없어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역사적으로 진리를 말하는 수많은 가르침과 육신의 정욕과 한계를 극복하려는 수없는 노력이 있었지만 그것이 실현되지 못했던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 그러므로 육신대로 사는 사람의 삶은 결국 그 육신의 동물적 소욕을 채워주는 쪽으로 가게 되어 있으며 이것은 거스르기가 대단히 어렵다.

다시 말하지만 아무리 가르치고 다듬고 추슬러도 육체는 육체이지 다른 것이 될 수 없다. 좋은 육체든 나쁜 육체든 육체는 육체이다. 사람이 영적 존재라는 것은 실제로 영의 인도(통제)를 받을 때 이야기이다. 그러므로 실제로 영의 인도를 받지 않으면 사람은 단지 육신을 가진 하나의 동물에 불과하다. 그리고 동물은 동물이므로 동물적 본성에 따라 사는 것이며 따라서 삶은 생각이나 소원이 아니라 그 동물적 본성에 우선적으로 좌우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성경이 철저히 사람의 본성을 '죄의 몸'이라는 말로 규정하며 육체 안에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수준의) 선이 나오지 않고 따라서 육체로는 하나님을 섬길 수 없다고 외치고 있는 까닭을 깊이 헤아려야 한다. 오늘날 교회들이 하고 있는 것을 보면 하나님은 안된다고 하는데 사람은 자꾸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동물의 모든 것은 그 세포, 그 유전자 안에 이미 다 새겨져 있다. 그것으로 인해 사람도 되고 개도 되고 이런 행동도 하고 저런 행동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 기록된 성질과 다른 행동을 하겠으며 그 기록된 길과 다른 길로 가겠는가? 그것은 다 사람의 생각이고 희망일 뿐 실제로는 전혀 가능하지 않다. 육체에는 육체의 길이 있으며 그것은 현저한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육체를 죽이고(자기를 부인하고) 영을 좇아 사는 새로운 길로 가지 않는 한 반드시 육체의 길로 갈 수밖에 없고 그 길에서 맺을 열매(육체의 일)는 현저하고 분명한 것이다.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우리 육신을 폐하시고 그의 부활 안에서 우리를 다시 살리신 것을 의지하지 않으면 우리는 바울이 말하는 이 현저한 육체의 일을 어떤 방법으로도 피할 수 없다.  

육체의 일은 현저하다. 그것은 곧 육체의 생존을 위해 먹고 마시는 것이며, 육체의 감각적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성적 쾌락과 술 취하는 것과 기타의 오락과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며, 그러한 욕망을 채우기 위해 즉 생존과 안전과 쾌락의 삶을 유지하고 보존하고 확대하기 위해 범죄하며 다른 사람과 경쟁하며 싸우는 것이다.

이것을 정리해 보면 육체의 일은 크게 서너 가지로 분류된다.
첫째, 생존을 위해 먹고 마시는 것이다. 이것은 생활 또는 직업과 관련된 일이다.
둘째, 생존 문제가 해결되면 (또는 그것과 병행하여) 쾌락을 추구한다. 그 쾌락은 성적 쾌락이 첫째이고 다음이 먹고 마시는 것이며 그 다음은 명예와 권력과 부를 통해 자기를 높이는 것이고 그 다음으로 각종 오락과 취미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쾌락을 즐기는 것이다.
셋째, 생존(삶)의 유지와 보장, 쾌락의 유지와 확대, 미래 삶(안전)의 보장을 위해 사람을 의지하거나 신(우상)을 의지하는 것이다.
넷째, 생존(삶)의 유지와 보장(안전)을 위해 또는 자기 영광을 위해(자기를 높이기 위해) 다른 사람과 경쟁하는 것이다. 그것 때문에 사람을 미워하고 시기하며 다투고 나누어지는 것이다.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여기서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 그리고 술 취함과 방탕함은 둘째 영역의 일에 해당한다. 그리고 우상 숭배와 술수(점쟁이나 무당을 찾는 것)는 셋째 영역의 일에 해당한다. 그리고 가장 많이 언급된 내용 곧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 등은 다 넷째 영역의 일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첫째 영역의 일은 왜 언급하지 않았는가? 그것은 육체의 본성 중 유일하게 정상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도 과도하게 추구하는 것은 정상적이지 않지만. 과도하게 추구한다는 것은 다만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매이며 그것으로 염려하는 것이다. 생활은 하면 되지 매일 필요는 없다. 그것의 종이 되고 그것을 위해 인생의 모든 것을 털어 넣고 온통 거기에만 힘을 집중하는 것은 정상적인 일이 아니고 위에서 언급한 '육체의 일'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어쨌든 여기서 바울은 이 첫째 영역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워낙 더 현저한 육체의 일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갈라디아서 5:19-21에서 언급하고 있는 육체의 일은 내용상 네 그룹으로 분류되어 있다. 첫째는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이고, 둘째는 {우상 숭배}와 {술수}이고, 셋째는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이고, 넷째는 {술 취함}과 {방탕함}이다.  

이제 첫째 내용 곧 둘째 영역의 육체의 일 중 먼저 언급된 음행에 대해 생각해 보자.

음행과 더러운 것, 호색. 이것은 다 육체의 성적 욕망을 표현한 것이다. 사람의 가장 기본적인 욕망 곧 육신의 가장 원초적이고 기본적인 욕망은 먹고 마시고자 하는 욕망이다. 이것은 육신의 생명을 유지하고자 하는 욕망이요 생존을 위한 욕망이다. 그 다음은 번식을 위한 성적 욕망이다. 그러므로 본래 성적 욕망은 정상적인 것이다. 그것 자체가 죄는 아니다. 그러나 사탄에게 속은 인간은 무엇이든지 과도히 추구하여 그 본래적 목적을 넘어서도록 그릇 사용하는 습관이 있다.

사람은 어느 정도 배가 불러지면 그 다음은 육신의 쾌락을 추구한다. 육신의 쾌락은 육신을 즐겁게 하는 것이므로 주로 먹고 마시는 것과 성적 즐거움을 그 수단으로 삼는다. 먹고 마시는 것은 생존 차원에서 그 욕구가 발동되다가 그것이 만족되면 그치면 좋은데, 육신을 통제하는 영의 기능이 상실된 이후 사람은 사탄으로 말미암는 헛되고 무익한 생각으로 인해 다른 동물들이 하지 않는 이상한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육신의 생존과 번식을 위한 본능적 욕구를 쾌락의 도구로 삼아 과도히 추구하는 것이다.

노아 홍수 당시 세상의 가장 현저한 죄악과 롯이 살던 소돔과 고모라 지역의 가장 현저한 죄악이 무엇이었는가? 바로 음행을 비롯한 성적 타락이었다. 이것은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죄악이다. 논리적 순서로 말하자면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우상 숭배이다. 이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늘 이것을 음행이라고 표현하셨다. 즉 성적 문란과 연관지어 말씀하신 것이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떠나 멸망에 이르게 하는 사탄의 공격(시험) 수순(手順)이 먼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질서를 파괴하고 다음으로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질서를 파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성적 음행이 먼저 일어나면 다음으로 영적 음행이 일어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성적 타락 즉 음행이 무서운 것은 그것이 인간 관계, 사회 질서를 파괴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침내 사람의 모든 기본적 삶, 삶의 질서, 인간 정신을 파괴한다. 성은 인간의 가장 소중한 자산이며 그것은 곧 인간 자신이다. 이것을 마음대로 사고 팔며 갖다 주는 것은 창자를 꺼내서 길바닥에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에서가 배고플 때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권리를 판 것과 같이 성을 충동에 따라 함부로 쓰는 것은 지극히 망령된 행실이다. 그것은 그의 영혼을 파는 것이며 파괴시키는 것이다.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딤후3:1-5)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계21:8)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버려 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 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버려 두셨으니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롬1:24-26)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고전6:9,10)

"식물은 배를 위하고 배는 식물을 위하나 하나님이 이것 저것 다 폐하시리라 몸은 음란을 위하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며 주는 몸을 위하시느니라 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기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창기와 합하는 자는 저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 육체가 된다 하셨나니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게 죄를 범하느니라"(고전6:13-18)

죄를 언급하는 모든 자리에서 하나님은 음행을 빼놓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 그것은 그만큼 이 죄가 다른 모든 죄의 근본이 될만큼 중요한 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단지 이 죄의 더러움만 볼 것이 아니라 이 죄의 근원성을 보아야 한다. 사탄이 왜 이 죄를 그렇게 크게 일으키며 모든 멸망하는 자리에서 왜 이 죄가 표면에 나타났는지를 보아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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