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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바울은 여기서 그리스도인이 무엇인지, 그리스도인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 무엇인지를 한 마디의 말로 분명하게 표현하고 있다. 즉 그리스도인은 성령으로 사는 사람 곧 그리스도의 영으로 사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8:9)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즉 성령으로 살고 성령으로 행하지 않으면 그리스도인이 아닌 것이다. 그만큼 성령으로 사는 것은 중요하다. 그것은 그리스도인 삶의 핵심이다.

'성령으로 살면' 이라는 이 간단한 한 마디의 말에서 우리는 또 하나의 중대한 사실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기독교는 전혀 종교가 아니다' 라는 사실이다. 우리(그리스도인)의 삶을 일컫는 말로 [기독교]라는 말을 쓰는데 이것은 우리가 스스로 붙인 것이 아니고 세상이 붙여준 이름이다. 그리스도를 믿는 종교라는 것이다. 세상의 눈에는 기독교도 여러 종교 중 하나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는 여러 종교 중의 하나가 아니며 전혀 종교가 아니다.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라 단지 삶이며 생명이다. 우리는 종교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살고 있는 자이다. 우리는 특별한 종교적 일을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요 다만 아들의 생명(하나님의 생명)을 가지고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종교란 무엇인가? 세상 상식에 따르면 종교란 신을 믿고 섬기는 것이다. 종교에는 큰 두 가지 특징이 있는데 첫째는 신을 섬기기는 섬기되 '사람이 자기 필요에 따라 스스로 신을 찾아간다'는 것이다. 즉 다만 신이 거기 있기 때문에 신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필요와 목적이 있어서 (자기를 위해) 신을 섬긴다는 것이다. 둘째는 신을 섬기는 내용과 형식이 일정하게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즉 모든 종교에는 율법과 제사, 사제(司祭), 성전, 절기 등 '신을 섬기는 일정한 종교적 형식(양식)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에는 이러한 두 가지 특징이 없다.

첫째, 성령을 좇아 사는 우리(그리스도인)의 삶에는 특별한 목적이나 이유가 없다. 누군가 우리에게 왜 하나님을 믿으며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성령을 좇느냐 하고 묻는다면 우리는 다만 그가 계시며 나를 그에게로 부르셨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어떤 사람은 나는 천국에 가기 위해서, 혹은 구원을 받기 위해서, 마음에 평안을 얻기 위해서, 복을 받기 위해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자기가 하나님을 찾아가서 자기 생각대로 하나님을 알고 자기 필요대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이 아니다. 즉 흔히 말하는 대로 말하자면 그것은 기독교가 아니다. 그것이 바로 종교이다. 기독교는 '하나님을 섬기는 종교', '예수를 섬기는 종교'가 아니다. 기독교는 다만 그리스도의 영으로 사는 것이다. 진정한 프로 등산가는 어떤 목적이 있어서 그렇게 죽을 고생을 해가며 산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단지 산이 거기 있어서 즉 등산이 좋아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참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어떤 목적이 있어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거기 계시니까 섬기는 것이다. 여기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내게 어떤 목적이 있어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 같으면 필요에 따라 하나님을 섬길 수도 있고 섬기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다. 그가 나를 지으신 내 창조자고 나를 낳으신 내 아버지이기 때문에 내가 그를 주(主)와 왕(王)과 아버지로 섬기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삶을 사는 것은 우리 생명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개는 개의 생명을 가졌으므로 개로 살고 사람은 사람의 생명을 가졌으므로 사람으로 사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로 살고 성령을 좇아 사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을 가졌고 우리 안에 성령이 계시기 때문이다. 어떤 목적이 있고 그렇게 해야 할 필요가 있어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내 속에서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도록 역사하는 생명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사는 것이다.

엄밀하게 말해서 우리가 사람을 사랑하고 용서하고 불쌍히 여기는 것은 그렇게 하면 나중에 우리가 천당을 갈 수 있다든지 또는 그렇게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며 복을 많이 주시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생명이 그런 생명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사람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이고 그 아들의 생명이 우리 안에서 동일한 역사를 일으키기 때문에 우리는 좋든 싫든 사람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결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우리 행동이 우리 육신에 유리하든지 불리하든지 관계없이 그렇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자신을 속이지 않는 한 우리는 앞으로도 전과 마찬가지로 그렇게 살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종교와 구별되는 우리의 삶의 모습이다.

세상 사람들은 현재와 미래의 삶에서 신으로부터 도움과 구원을 얻으려고 신을 섬긴다. 물론 그 신도 하나님을 아는 희미한 본성적 지식과 자기 상상을 보태서 임의로 만든 것이지만. 그러나 우리는 다만 살아계신 하나님이 빛을 비추사 우리를 자기에게로 부르셨으므로 그에게로 나아가며 그를 따르는 것이다. 여기에는 아무 목적이나 이유도 없으며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선택의 여지도 없다. 다만 주어진 생명대로, 비춰진 빛(지식)을 따라 사는 것이다.  

둘째, 우리 삶이 종교가 아닌 또 하나의 큰 이유는 우리에게는 모든 종교에 있는 그 어떤 율법(규례)이나 종교적 의식이나 형식이 없고 오직 성령의 인도(생명의 역사)만 있다는 것이다. 모든 종교에는 지켜야 할 계율이 있다. 그것이 필요한 것은 그 종교가 원하는(지향하는, 제시하는) 일정한 삶을 살게 만들기 위함이다. 어떤 특정한 행위, 특정한 삶이 그 종교를 특징짓기 때문에 신자들은 반드시 일정한 행위를 해야 한다. 그런데 가만히 두면 그런 생활을 하지 않기 때문에 규율을 정해 그러한 행위를 하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이것이 율법이다. 예를 들어 불교는 살생을 금하며 승려에게는 머리를 깎는 것을 비롯한 여러 금욕적 삶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런 행동은 육신의 본성과 반하는 것으로 힘든 일이기 때문에 저절로 되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계율이 주어지는 것이다. 이 율법은 사람으로 불교의 이상에 맞는 최소한의 행동을 표현하도록 하기 위한 필수적인 장치이다. 그것이 없다면 자기들이 추구하는 그런 삶을 표현할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에 그것은 모든 신자들에게 절대적인 규범으로서 강제되어져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삶 곧 성령을 좇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그런 율법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어떤 삶(자기와 같이 거룩할 것)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은 다만 그 요구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우리 생명이 되셔서 우리로 결국 자기를 닮고 자기와 같은 삶을 살도록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어떤 계명도 계율도 없으며 필요치도 않다. 다만 하나님의 말씀만 들려지면 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율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이요 하나님의 생명을 전달하고 공급하는 통로일 뿐이다. 유교에도 제사나 기타의 규율이 있다. 이것은 부모를 공경한다든지 하는 기본적인 유교의 가르침을 실현하는데 있어서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장치이다. 이런 율법과 의식들이 없다면 불교나 유교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도 않는 것처럼 보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율법이나 그 어떤 종교적 예식이나 의식이나 형식도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다만 성령으로 살뿐이다.

모든 종교에는 예배와 예식, 의식과 절차가 있다. 그것은 그들의 생명과 행위, 생명과 생활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들의 실제(생명)와 그들이 추구하는 바(소원)가 다르기 때문에 특별한 절차와 의식을 통해서 그들이 추구하는 바를 억지로라도 표현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이슬람교를 비롯한 여러 종교들에서는 집회를 가지기 전에 손과 발을 깨끗이 씻는다. 이것은 그들이 무언가 깨끗하고 거룩한 상태를 추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일종의 의식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들의 실제(생명)가 깨끗하고 거룩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 만일 그들의 속(생명)이 깨끗하고 거룩하다면 그것을 손을 씻는 행동을 통해서 억지로 표현하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그들 자신들도 자기들이 바라는 것이 손과 발의 깨끗함이 아니라 속(사람)의 깨끗함이라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속은 밖을 깨끗케 함으로써 깨끗해지지 않는다. 손을 씻는다고 해서 사람이 거룩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그런(깨끗하고 거룩한 사람이라는) 실제가 없으므로 그런 외식(外飾) 또는 의식이라도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그것마저 없다면 그들에게 남는 것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않다. 우리는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하나님의 실제가 있다. 의와 사랑과 거룩의 실제가 우리 안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일부러 거룩한 척 할 필요가 없고 일부러 깨끗하고 자비롭고 고요한 척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룩이나 기타 우리가 추구하는 바를 외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의식이 필요 없다.

선이나 거룩을 표현하는 것뿐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행위 자체도 어떤 의식이나 모양으로 특별하게 표현할 필요가 없다. 우리 안에 하나님이 계시고 그가 우리 안에서 우리를 인도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다만 그의 생명을 따라 살면 되지 일부러 (신을 섬기는) 예배나 제사 따위를 드릴 필요가 없다.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는 길도 없다. 구약 시대에는 있었지만 지금은 다 지나간 일일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소위 '예배'라는 것을 드리지 않으며 그런 것이 전혀 우리 삶의 특징이나 기본이 되지 않는다. 우리 삶은 전체가 다 예배이며 전체가 다 제사이며 전체가 다 거룩한 절기요 안식일이다. 그리고 신과 사람 사이의 중보가 되는 사제(제사장)도 따로 필요치 않으니 그것은 우리 모두가 신과 연합한 자로서 각각 사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많은 말을 하지 않고 오직 '성령으로 살면 성령으로 행하라'는 한 마디 말을 한 것이다. 그리고 그 말이면 충분하다. 성령으로 사는 사람은 여러 가지를 할 것이 아니고 오직 성령으로 행하면 된다. 즉 성령께 순종하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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