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llde1
slide2
slide3
slide4
우리는 지난 주에 성령으로 사는 것이 우리 삶이라는 사실에 대해 생각했다. 성령으로 사는 것은 우리 삶의 기본이고 전부이다. 성령으로 사는 것은 우리 삶의 내용이고 형식이다. 그것이 우리의 예배요 제사요 축제요 절기이다. 날마다 영을 좇아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그리스도인 삶의 실제이다.

"성령으로 살면 성령으로 행할지니" 라는 말씀은 '영은 끊임없이 사용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말이다. 그리스도인이라도 해서 저절로 영으로 사는 것은 아니다. 영으로 살면 영으로 사는 것이고 육으로 살면 육으로 사는 것이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8:13,14) 그러니까 죽을 때는 죽더라도 그리스도인도 육신대로 살 수 있는 것이다. 죽든 살든 육신으로도 살 수 있고 영으로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영으로 살면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생명을 누리며 승리의 삶을 사는 것이고 육으로 살면 죄와 사망에 매여 사는 그것이다. 그러므로 선택의 여지가 있는 셈이다. 사실 선택의 여지가 없다면 성령으로 살라고 권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강제는 오직 진리의 강제요 빛의 강제이다. '사실이 이러하니 너희는 마땅히 어느 길로 가야하겠느냐' 하는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강제 방식인 것이다. 빛이 있는 사람은 밝은 길로 간다. 눈이 어두우니까 살 길을 놔두고 죽을 길로 가는 것이지 살 길과 죽을 길이 훤히 보이는데 누가 죽을 길로 가겠는가? 그러므로 하나님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빛을 비추시며 진리를 밝히신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8:6)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6:8)
이 말씀들은 그 자체가 다 진리의 빛이다. 권면이 아니라 사실을 설명하는 것이다. 눈이 있어서 이 당연한 진리를 보는 사람은 살 것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죽는 것이다.

바울이 갈라디아서 5:22,23에서 성령의 열매에 대해 말한 것도 갈라디아교회 형제들이 진리 안에 서도록 빛을 비추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다. 영을 좇으면 간단히 그들이 그렇게 간절히 원하는 삶(사랑과 희락과 화평....)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아주 간단하다. 다만 성령께 복종하면 된다. 그러나 이런 저런 이유로 지금까지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자신들이 원하는 거룩한 삶이 없었고 또 그렇기 때문에 율법과 의식과 외식이 등장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다. 바울은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그들에게 믿음과 율법, 성령과 육신, 영의 열매와 육신의 일에 대해 설명한 것은 이런 사정을 그들에게 말해줌으로써 그들을 일깨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영의 열매는 생명과 평안이요 육의 열매는 죄와 사망이다. 바울은 '열매 맺는 신앙'에 강조한다. 즉 영이 적극적으로 사용되고 그 결과 하나님의 생명이 밖으로 표현되는 생활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신앙이 있다는 것만으로는, 하나님을 안다는 것만으로, 성령을 받았다는 것만으로, 영의 인도를 느낀다는 것만으로, 은혜를 체험한 적이 있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 삶은 그 생명이 풍성하고 온전하게 체험되고 표현되어져서 밖으로 드러나게 되기까지 나아가지 않으면 안된다. 풍성한 열매를 맺기까지 우리 믿음은 자라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 생명은 날마다 자라야 하고 우리의 영적 체험은 날마다 충만케 되어야 한다. 다만 영이 있고 다만 생명이 있다는 것은 절대로 충분하지 않다. 아기가 먹지도 않고 크지도 않고 그대로 있는 것은 심각한 일이다.

선한 일에 풍성한 열매를 맺기까지, 하나님의 생명이 내 속에서 온전히 표현되기까지, 그리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의 삶을 통해 분명하게 표현되기까지 우리는 영을 사용해야 한다. 성령께 복종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일이 우리 삶의 일상이 되고 점점 구체화되고 점점 깊어져야 한다.  


이제 바울이 말한 바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는 말씀을 따라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투기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조금 더 살펴보도록 하자.

헛된 영광이란 우리에게 실제로는 영광이 되지 않는데 영광이 될 것으로 생각하여 추구하는 것들이다. 그 중 첫째가 {육신의 안락, 쾌락}이다. 육신은 일정한 영양 섭취와 휴식을 취하기만 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몸은 하나님의 일을 위한 도구로서 그 자체의 목적이나 소원, 그 자체의 기쁨과 영광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사탄에게 속은 인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한도 끝도 없이 육신을 위한다. 그것은 육신의 감각적 욕망을 자기의 참 욕구와 필요로 착각한데 기인한 것이다. 그래서 육신의 욕망을 채워주기 위해 온 몸과 삶을 다 바치는 것이다. 이것은 고전6장에서 바울이 한 한 마디의 말로 가장 분명하게 표현될 수 있다. "식물은 배를 위하고 배는 식물을 위하나 하나님이 이것 저것 다 폐하시리라" 몸의 욕망을 위해 사는 것은 헛된 일이고 거기서 몸이 느끼는 만족은 사람의 참된 영광이 아니라 헛된 영광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것을 폐하시고 새롭고 참된 삶을 우리에게 허락하셨다. 이제 우리는 영의 욕구를 만족시키는 새로운 삶을 산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사는 삶 곧 성령께 복종하는 삶은 무엇보다 이러한 헛된 육신의 욕망에 복종치 않는 것으로 나타나야 한다. 영의 통제가 없으면 육신은 끊임없이 헛된 영광을 구하여 허덕이며 다니게 된다. 성령으로 살지 않으면 우리는 육신이 그 타락하고 왜곡된 감각을 따라 끊임없이 허무한 것들을 추구하는 것을 막을 길이 없다. 먹고 마시며 쾌락을 누리며 헛된 부와 헛된 명예와 헛된 힘(권세)을 추구하는 것을 막고 우리 몸이 하나님의 용도에 합당하게 쓰이도록 하려면 우리는 매 순간 성령께 주목하고 그의 인도를 철저히 따라야 한다.  

육신의 안락뿐 아니라 {율법적인 삶, 종교적인 삶}도 역시 헛된 영광을 추구하는 것이다. 육신의 안락과 쾌락을 좇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외형부터 다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경계하지만 율법적인 삶 곧 육신의 능력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생활, 자기로 하나님을 섬기는 생활은 외형상 경건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막기가 더 어렵다. 그러나 우리는 이 일에서도 철저히 성령을 좇아 행함으로써 헛되이 하나님을 섬기지 않도록 해야 하며 하나님을 빙자하여 육신이 자기 영광을 나타내려고 하는 것을 철저히 경계해야 한다. 경건의 내용은 없고 경건의 모양만 있는 이것은 절대로 참 영광이 될 수 없고 헛된 영광에 불과한 것이다.  

다음으로 바울은 갈6장에서 교회에서 일어나는 범죄 및 형제를 용납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다.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 잡고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만일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니라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만 있고 남에게는 있지 아니하리니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임이니라"

형제의 잘한 일이나 못한 일로 형제를 시기하고 질투하거나 비난하며 멸시하는 일은 생명을 거스려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투기하는 것이요 이해하고 용납하며 짐을 서로 지며 세워주는 것은 생명대로 행하는 것 즉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것이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1 성경의 합당한 사용 (2) (요7:17) / 2003. 3. 31 이상봉 2010.05.03 3904
50 성경의 합당한 사용 (1) (요5:39, 20:31) / 2003. 3. 23 이상봉 2010.05.03 3890
49 예수의 흔적을 지닌 인생 (갈6:16-18) / 2003. 3. 16 이상봉 2010.05.03 4286
48 십자가로 자랑함 (2) (갈6:12-18) / 2003. 3. 9 이상봉 2010.05.03 4094
47 십자가로 자랑함 (1) (갈6:11-15) / 2003. 3. 2 이상봉 2010.05.03 4108
46 낙심치 않고 끝까지 주를 따름 (갈6:9,10) / 2003. 2. 23 이상봉 2010.05.03 3925
45 영을 위해 심는 삶 (갈6:7-9) / 2003. 2. 16 이상봉 2010.05.03 4316
44 진실한 인생 (2) (갈6:6-8) / 2003. 2. 9 이상봉 2010.05.03 4047
43 진실한 인생 (1) (갈6:1-8) / 2003. 2. 2 이상봉 2010.05.03 3778
42 성령으로 삶 (4) (갈5:25,26) / 2003. 1. 26 이상봉 2010.05.03 4032
» 성령으로 삶 (3) (갈5:25,26) / 2003. 1. 19 이상봉 2010.05.03 4066
40 성령으로 삶 (2) (갈5:25,26) / 2003. 1. 12 이상봉 2010.05.03 3612
39 성령으로 삶 (1) (갈5:16-24) / 2003. 1. 5 이상봉 2010.05.03 3835
38 성령의 열매 (2) (갈5:22,23) / 2002. 12. 29 이상봉 2010.05.03 3610
37 성령의 열매 (1) (갈5:22,23) / 2002. 12. 22 이상봉 2010.05.03 5541
36 육체의 일 (3) (갈5:19-21) / 2002. 12. 15 이상봉 2010.05.03 4331
35 육체의 일 (2) (갈5:19-21) / 2002. 12. 8 이상봉 2010.05.03 4254
34 육체의 일 (1) (갈5:19-21) / 2002. 12. 1 이상봉 2010.05.03 6189
33 성령을 좇아 행함 (3) (갈5:16-18) / 2002. 11. 24 이상봉 2010.05.03 3851
32 성령을 좇아 행함 (2) (갈5:16-18) / 2002. 11. 17 이상봉 2010.05.03 3969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