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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한 인생 (2) (갈6:6-8) / 2003. 2. 9

2010.05.03 10:14

이상봉 조회 수:4047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3.형제들과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함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는 이 말씀은 일반적으로 '가르침을 받는 자들이 말씀을 가르치는 자를 자기가 가진 물질로 잘 대접하고 섬겨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되고 있다. 물론 이 말씀은 그런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이 말씀을 그 정도로만 이해하는 것은 충분치 않다고 생각된다. 가르침을 받는 자가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한다고 할 때 가장 중요한 사실은 여기서 말하는 '모든 좋은 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바울의 말을 '가르침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를 잘 대접해야 한다'는 식으로 이해하는 것은 여기서 말하는 '모든 좋은 것'을 '가르침 받는 자들이 가지고 있는 물질'로 이해하는 것이다. 즉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할 것이니라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군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느니라"(딤전5:17,18)라는 말씀에서 언급되고 있는 바와 같이 이해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옳은 말이다. 바울의 시대나 오늘이나 복음 전파를 위해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자기를 전적으로 드려 사람들을 섬기는 전도자들의 형편이란 언제나 어렵다. 바울 자신만 하더라도 자신이 일을 해서 생활비를 벌었지만 형제들의 공급이 없었을 때는 사역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비록 그는 형제들에게 아무 것도 직접 구하지는 않았지만 많은 형제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자기 사역에 후원을 함으로써 하나님의 일이 원활하게 수행될 수 있기를 원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예하였으니 잘하였도다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예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 두 번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과실이 번성하기를 구함이라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의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4:11-19)
이 말씀을 보면 바울은 빌립보교회 형제들이 몇 번 자기의 쓸 것을 공급한 것을 두고 매우 기뻐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형제들이 자기가 가진 모든 좋은 것들을 서로의 필요에 따라 나누고 공급하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며 하나님의 일이 잘 되도록 도모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가르침을 받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말씀을 가르쳐 영생을 누리도록 돕는 사람을 위해 자기가 누리고 있는 이생의 쓸 것들을 나누어주는 것이 좋다.

그러나 앞서도 말한 바와 같이 바울이 말한 '모든 좋은 것'을 오직 이런 식으로 물질로만 이해하는 것은 충분치 않다. 오히려 모든 좋은 것이란 '말씀을 가르치는 자가 지니고 있는 모든 좋은 것' 곧 가르치는 자의 영적 은사와 영적 지식과 영적 체험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우리는 항상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지 않으면 안된다. 이렇게 이해하면, 가르침을 받는 자가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는 말씀의 의미는 교회의 모든 형제들이 그들을 가르치는 사람 곧 영적으로 앞서 가는 형제와 더 철저히 교제하여 그의 모든 것을 다 빨아냄으로써 그와 모든 좋은 것을 다 공유하도록 하라는 것이 된다.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엡4:11-14)
주님이 교회에 가르치는 자 곧 사도나 선지자나 목자가 교사 등을 세우신 이유는 그 사람 안에 있는(먼저 공급받은) 은혜를 다른 형제들에게 나누어주어 공유토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하여 먼저 시작한 사람이나 뒤에 시작한 사람이나 다 예수를 믿고 누리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이 항상 원하시는 것은 교회의 모든 지체들이 다 하나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 하나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하나로 연합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형제들이 다 하나의(같은) 높은 영적 상태에 이르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가르침을 받는 사람은 아무리 잘 듣고 잘 배운다 해도 가르치는 사람의 모든 것을 다 공유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저 귀를 열어서 한 시간 말을 듣고 형식적으로 교제를 나누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우리는 먼저 형제에게 있는 은혜와 은사를 나도 기어이 가지며 기어이 누리겠다는 생명의 열망부터 가져야 한다. 그리하여 누구든지 내게 없는 좋은 것을 가진 사람을 보면 '어떻게 하든지 저 사람으로부터 저것을 우려내야지' 하는 마음으로 그와 깊이 교제하며 청종해야 한다. 그리고는 더 나아가서 모든 좋은 것(은사)의 원천이신 주님께 나아가서 '내게도 저런 은혜를 주십시오' 하고 구해야 한다. 말씀을 가르치는 형제 자신이 생명의 원천이 아니라 그를 통해 일하시는 주님이 생명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할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으로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할 수 있다.

풍성한 은혜는 언제나 선한 욕망, 신령한(영적) 욕망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이런 욕망을 하나님이 반드시 채워주시리라고 믿고 사람과 교제하며 주님과 교통하는 것이 진정한 믿음이다. 누구든지 생명의 열망이 없으면 풍성한 생명을 누릴 수 없다. 살려는 의지가 없으면 살지 못하는 것이다. 사탄은 살인자이므로 항상 우리를 죽이려고 기회를 노리고 있다. 그는 거짓말과 망각과 세상 염려를 수단으로 하여 우리로 생명에 마음을 두지 못하도록 역사한다.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진리를 가까이하며 생명을 가까이하는 것이다.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고자 하는 열망이 크면 클수록 말씀을 더 가까이하게 되며 말씀을 가까이하면 할수록 마귀의 거짓말과 허무한 생각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생명을 풍성하게 누릴 수 있다.


4.하나님은 조롱당하지 않으심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 받지 않으신다는 말은 문자 그대로 하면 하나님은 놀림(조롱)을 받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무엇이 하나님을 놀리는 것인가? 진실치 않은 모든 생각과 삶이 바로 하나님을 놀리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하나님이 정하신 길대로 가지 않는 모든 삶 곧 사람이 (하나님이야 무어라고 말씀하시든 상관치 않고) 자기 좋을 대로 생각하며 자기 좋을 대로 살아가는 것은 바로 하나님을 조롱하고 우롱하는 것이다. 진리를 거스려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하나님과 자신을 속이는 일이다. 진리를 거스르는 삶이란 한 마디로 말해서 육체대로 사는 것이다. 육신의 욕망대로 사는 것이 바로 진리를 거스름으로써 하나님을 조롱하는 삶이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만 속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도 속이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미 우리(사람) 안에 진리를 심어놓으셨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든지 그 양심대로, 곧 그 영의 요구대로 살지 않으면 편치 않게 되어 있다. 아무리 이론과 논리와 궤변으로 얼버무리고 덮으려 해도 하나님과 우리 양심은 우리가 생명의 길을 벗어나 육체의 허무한 욕망대로 가려고 한다면 (그것은 죽는 길, 망하는 길로 가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에 동의하지 않으며 무마되지 않는다. 아무도 진리를 거스려 스스로를 속일 수 없으며 하나님을 속일 수 없다.

진리 또는 진실이란 하나님이 말씀하신 바로 그 길 곧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 아들의 길이다. 이 길로 가는 것만이 진실한 인생이다. 사탄은 사람의 생명(행복)이 그 육체의 감각을 만족시켜주는데 있다고 말하지만 하나님은 사람의 생명이 하나님을 알고 누리며 그의 말씀에 순종하며 그 뜻을 이루는데 있다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사람의 생명이 육체(의 욕망)에 있다는 마귀의 말과 사람의 생명이 영(의 욕망)에 있다는 하나님의 말씀 중 어느 것이 옳은지 어느 말이 진실인지를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이 옳다고 선택했다면 육신대로 살면 죽고 망한다는 사실을 날마다 분명하게 인식하고 매일 (영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육신의 욕망을 거절하는) 십자가의 길을 걸어야 한다.

하나님이 사람으로부터 기만과 조롱을 당하지 않으시는 것은 사람이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세상 모든 삶에는 진리가 적용되고 있으며 진리는 (없어지지 않고) 항상 그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만일 세상에 어떤 사람이 콩을 심었는데 팥이 나는 일이 한 번이라도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육으로 심어도 영의 열매를 거둘 수도 있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아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가 되어 그의 영접을 받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없다. 무엇으로 심든지 언제나 그 심은 대로 거두지, 심지 않은 것을 거두거나 심은 것과 다른 것을 거두는 일은 없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이것은 얼마나 분명한 사실인가? 이것은 진리의 기본이다. 사람의 모든 행동은 다 이 기초 위에 서 있다. 알고 보면 세상에는 이 진리를 알지 못하거나 믿지 않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다 이 사실을 믿기 때문에 (농사든지 무엇이든지) 일을 하며 행동을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전혀 이 진리를 알지 못하는 사람처럼 행동한다. 그것은 그들이 매일 사탄의 기만을 당하고 살기 때문이다. 마귀가 사람을 순간 순간 속이고 또 속이는 것이다. 술을 많이 먹으면 병이 나고 운전을 난폭하고 과하게 하면 사고가 난다는 사실은 다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하는 이유는 마귀가 그 사람 안에서 순간 순간 '설마 오늘이야 무슨 일이 일어날라고' 하는 마음을 심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영을 받은 사람이고 이 영은 우리 안에서 매 순간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준다. 우리 영은 이 말씀의 부담을 가지고 그대로 살고자 한다. 그러나 마귀는 육신의 욕망을 자극하며 다른 말로 우리를 속인다. 우리가 매순간 우리를 가르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우리는 이 마귀의 거짓말 곧 육신의 원하는 것은 잠재워야 한다. 그리고 진리를 따라 사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마귀의 거짓말을 들으면 우리는 영의 욕망을 잠재워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과 자신을 속이고 잠깐의 즐거움을 위해 순간의 기분과 감정을 따라 허무한 일을 하는 것이다.
우리가 속지 않으려면 늘 진리 안에 거해야 한다. 우리는 매순간 이 말씀을 묵상하며 자신을 일깨워야 한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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