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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성경을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

2-1.영적인 사람

2-2.헌신적이고 순종적인 사람

성경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기 위한 두 번째 조건은 진실로 주님을 사랑하고 가까이 하려는 마음 및 주의 생명을 간절히 사모하는 열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은 오직 주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과 주님의 말씀을 진실로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만 열려 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의 삶을 주님께 드려서 헌신하고자 한다. 이런 사람에게는 자기 생각이나 계획, 사사로운 소원이나 야망이라는 것이 없고 오직 하나님의 뜻만 있을 따름이다. 그러므로 그는 항상 하나님의 음성을 사모하며 하나님의 뜻을 추구한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마음이 열려 있으며 무엇이든지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바로 자기를 드려 순종하고자 한다. 이런 사람이 바로 헌신적이고 순종적인 사람이요 성경은 바로 이런 사람에게 열려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빛과 같다. 그 빛을 다 받아들여서 우리가 온전히 밝아지기 위해서는 우리 마음이 완전히 열려 있어야 한다. 카메라의 셔터를 닫아놓고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처럼 마음을 닫아놓고 하나님의 빛을 받아들이기를 기대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성경을 공부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이해하려는 사람은 마음에 어두운 구석이 남지 않도록 반드시 마음을 완전히 열어놓고 있어야 한다.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 완전히 열려 있다는 것은 무엇이든지 조건 없이 하나님께 자신을 바칠 태세를 갖추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도 일시적으로나 충동적으로가 아니라 삶의 근본 자세로서 그런 태도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무엇이든지 받아들여서 순종하겠다는 확고한 자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야 참으로 하나님께 열려 있는 사람이며 이런 사람만이 성경을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다. 그 마음 속에 '이것은 순종하겠지만 저것은 순종할 수 없다'는 식의 유보 영역이 남아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다 받을 수 없다. 무엇이든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가리지 않고 다 듣겠다는 마음을 가진 사람만이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다 이해할 수 있다.  

하나님께 순종할 수 없을 때 사람은 자신을 옹호하게 되며 그 부분에 있어서는 성경의 진리를 알지 못하게 된다. 그런 부분에 이르게 되면 말씀의 핵심을 알 수 없어서 주변을 계속 빙빙 돌게 된다. 이것은 그 말씀 자체가 큰 지각과 총명을 요구할 만큼 어려워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그 부분에 있어서 하나님께 자신을 감추며 방어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하나님께 완전히 헌신적이지 않은 사람은 어느 부분에서 가서는 걸리고 만다.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마6:22-24)

이 말씀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우리 몸에 빛이 충만하려면 반드시 우리의 눈 곧 우리의 마음이 성해야(온전해야) 한다. 마음이 성치(온전치) 않다는 것은 마음이 재물과 하나님께 동시에 있는 것을 가 있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나 육신은 언제나 재물 편이기 때문에 재물을 생각하면 마음은 곧 하나님으로부터는 멀어지고 만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은 단순해야 한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참으로 섬길 마음이 있다면 마음에 육신을 위해 육적인 욕망을 이루고자 하는 영역을 남겨두어서는 안된다. 이것은 곧 하나님께 순종할 수 없는 영역을 남겨두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그렇게 되면 눈이 성치 않아서 빛을 제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오직 단순한 눈, 온전한 눈을 가진 사람만이 성경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제대로 볼 수 있고 거기서 생명을 공급받을 수 있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서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요7:17)

이 말씀은 성경을 깨달을 수 있는 비결을 가장 단순하면서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감추어진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한 가장 손쉽고 확실한 방법은 '하나님의 뜻을 기꺼이 행하고자 하는 순종의 마음'을 갖는 것이다. 그러므로 순종은 깨달음의 첫째 조건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일을 알려주는 것은 주인의 의무요 일에 순종하는 것은 종의 의무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당신의 뜻을 감추지 않고 가르쳐주신다. 이것은 주님의 일이요 책임이다. 우리의 일과 책임은 다만 그 말씀을 받아서 순종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을 실제로 행하고자 하는 마음만 확실히 가지고 있다면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할 이유가 없다. 하나님은 항상 말씀하고 계신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은 모든 사람에게 전적으로 열려져 있는 책이다. 다만 그 말씀을 듣고자 하지 않기 때문에, 즉 자기 필요에 따라 자기가 원하는 말을 듣기를 원할 뿐 하나님의 음성을 있는 그대로 듣고자 하지 않기 때문에 그 말씀이 들리지 않는 것이다.

우리에게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야 모든 것이 제대로 되어 가는 것이라는 이 확신이 있고 또한 그에 따라 내 소원(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원(뜻)을 듣고자 하는 마음과 그 뜻을 반드시 실행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우리에게 활짝 열리게 될 것이다. 실천을 하고 대가를 치르려는 마음이 많이 준비되면 성경의 빛은 그만큼 많아진다. 그러나 순종할 마음도 없이 그저 하나님의 뜻을 알아두려고만 하는 사람들이나 자기가 듣고 싶은 말을 들으려고 애를 쓰는 사람은 결코 성경의 의미를 제대로 깨닫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말씀을 사람들이 억지로 헐값에 받아들이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하나님은 오직 헌신된 사람, 비싼 대가를 지불할 용의가 있는 참 하나님의 사람에게만 당신의 말씀을 들려주신다. 성경은 분명히 공개된 책이며 만인에게 열려 있다. 그러나 실제로 거기서 생명의 유익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참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그 뜻을 반드시 받들고자 하는 사람들뿐이다.  


2-3.부지런하고 주의 깊은 사람

성경의 진리를 온전히 깨닫기 위한 세 번째 조건은 성경을 대하는 태도와 습관이 바르고 온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곧 진리를 찾을 때까지 인내와 끈기를 가지고 주의 깊게 말씀을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곧 하나님 자신을 나타낸 것이다. 그러므로 말씀은 하나의 살아 있는 인격과 같다. 그러므로 주의 깊고 조심스럽게 그리고 차근차근 긴 시간을 두고 사귀어야 한다. 성경이 내게 다가오는 것만 기대하고 내가 변하여 성경의 세계(정신)로 다가갈 것은 생각지 않는 사람은 성경 진리와 깊이 사귈 수 없다. 그도 오고 나도 가는 것이다. 성경은 내가 필요할 때 언제든지 내게 와서 봉사하다가 필요 없으면 물러가는 그런 무생물이 아니라 살아 있는 인격이므로 귀한 친구를 사귀는 것처럼 그렇게 세심하게 대하며 사귀지 않으면 안 된다.

"내 아들아 네가 만일 나의 말을 받으며 나의 계명을 네게 간직하며 네 귀를 지혜에 기울이며 네 마음을 명철에 두며 지식을 불러 구하며 명철을 얻으려고 소리를 높이며 은을 구하는 것 같이 그것을 구하며 감추인 보배를 찾는 것 같이 그것을 찾으면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잠2:1-5)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잠8:17)

감추어진 보배를 찾는 태도가 어떤 것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나는 땅에 있는 자이다. 그러므로 그의 세계를 누워서 발끝으로 책장을 뒤적거리는 식으로 알 수는 없다. 말씀을 연구하는 사람은 지극히 성실하고 부지런해야 하며 진리를 얻을 때까지 불굴의 인내와 의지로 말씀을 대해야 한다.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히5:13,14)

여기서 의의 말씀이란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것은 부지런히 연구하고 삶에서 부단히 적용하여 체험할 때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게으른 사람이나 실천력이 없는 사람, 인내가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알 수 없다. 많은 신자들이 성경을 기분 내킬 때만 한 번씩 읽을 뿐 습관적으로 부지런히 탐독하지 않으며, 이해가 잘 안 되는 부분을 만나면 금방 성경을 덮어버리거나 적당히 자기 마음대로 생각해버리고는 넘어간다. 그리고 실제 삶에서 그 말씀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어떻게 적용되는지, 어떤 능력을 발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는다. 그러므로 말씀을 깊이 알지 못하는 것이다.

성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지 부지런한 것만 가지고는 안된다. 반드시 주의 깊고 신중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성경을 소설책이나 잡지를 읽는 것처럼 읽는다. 이것은 말하자면 영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요 '지각(知覺)'조차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타락하지만 않았다면, 그리고 성경을 읽는데 사탄의 방해만 없다면, 우리는 신경 써서 힘들게 성경을 읽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읽기만 해도 저절로 그 의미를 다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경 써서 힘들게 성경을 공부하지 않으면 안된다. 성령님은 우리가 그런 태도를 갖도록 도우신다.

마귀의 거짓말이 온 인류의 마음과 생각을 사로잡고 있고 그런 생각들이 세상의 상식이 되어버린 이 시점에서 하나님의 말씀 진리는 감추어진 보배와 같다. 그러므로 주의 깊게 살피지 않으면 그것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말씀 진리를 깨달으려면 잃어버린 물건이나 감추어진 보물을 찾는 것이 부지런하고 주의 깊게 살피지 않으면 안 된다. 생각 없이 성경을 읽거나 끈기 없이 성경을 대충 대하고 마는 사람은 성경에서 단지 쓰여진 문자를 읽을 수 있을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언제나 자기의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그러므로 그 생각은 늘 주관적이다. 그들에게는 어떤 사물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런 사람은 성경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늘 자기가 옳고 자기 생각이 옳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은 남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다. 그러므로 성경을 공부해도 거기서 무언가를 배우지 못한다. 왜냐하면 성경이 자기가 아는 이야기를 하면 '아 그것은 내가 아는 거야. 성경도 별 것 없네' 라고 생각하고, 반대로 성경이 자기가 모르는 이야기를 하면 '아 이것은 틀렸어. 이 말은 오늘의 현실과 동떨어져 있군' 하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은 (다른 데서도 마찬가지지만) 성경에서 무언가를 배우려는 열의가 별로 없기 때문에 새로운 진리를 깨달을 수 없다. 이런 사람은 예를 들자면, 그가 물을 생각하고 있을 때 다른 사람이 그에게 탱크에 대해 말한다면 그는 물탱크에 대한 이야기로 생각하고 말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겠는가? 오직 마음이 겸손하고 주의 깊은 사람, 자기 생각을 접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하는 사람만 성경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제대로 들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성경을 제대로 공부하는 훈련이 된 사람은 다른 공부를 할 때나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할 때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남이 무슨 말을 할 때 그 말을 주의 깊게 잘 들으며 그 말의 의미를 정확하고 빨리 파악하는 능력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남의 말을 잘 듣는 훈련을 하는 것은 성경을 바로 이해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우리에게는 반드시 이런 태도가 필요하다. 우리는 꾸준히 성경 안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핵심을 잡고 그 결과 감추어진 비밀을 포착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이렇게 될 때 하나님의 말씀도 잘 들을 수 있고 사람의 말도 잘 들을 수 있다.  

주관적인 태도, 부주의, 호기심 등은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고 분명하게 이해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잘못된 태도이다. 이런 태도가 있는 사람은 반드시 성령님으로부터 교정을 받아야 한다. 이런 습관은 하루 아침에 개선되기 어려우므로 지속적으로 고쳐나가야 한다.  



3.세 가지 몰입

성경은 성령님께서 그의 종들을 통해 쓰신 것이므로 성령님의 도움 없이는 결코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성령님께 성경 이해를 의뢰하고 그를 따를 때 그는 우리를 어디로 인도하시는가? 성경의 저자이신 성령님은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몰입하도록 이끄신다.

첫째, 성령님은 우리를 그의 생각(뜻, 사상, 교훈) 안으로 이끄신다. 성령님은 먼저 우리가 그분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를 깊이 이해하며 그 (성령의) 생각 안으로 몰입하기를 원하신다. 이것은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지를 알려면 성경의 여러 사람들의 말을 통해서 표현되고 있는 성령님의 생각을 이해해야 한다.

둘째, 성령님은 우리가 성경 안에서 제시되고 있는 여러 사실들(fact)에 대해 익숙하며 정통하기를 원하신다. 성경은 그 자체가 진리이며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과는 다른 의미에서 성경 안에는 우주의 근본 원리 또는 구원의 길로서의 진리가 들어 있다. 즉 창조 원리 또는 복음 진리 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것들을 바로 이해하려면 반드시 그것들을 설명하기 위해 제시되고 있는 여러 역사적 사건들과 사실들에 대해 익숙하지 않으면 안된다. 성경의 사실들(facts)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하면 성경의 교훈과 정신도 알 수 없다.

셋째, 성령님은 우리가 단순히 성경의 표면적인 가르침만 이해하지 않고 그 쓰여진 글의 영(정신) 곧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마음과 소원 안으로 깊이 몰입되며 거기에 공감하기를 원하신다.


3-1.성경의 생각 안으로 들어감

성경을 공부하는 사람은 단순히 성경에 쓰인 글을 읽거나 외우는 것만 해서는 안되고 반드시 각 구절에 담긴 성령님의 원래 의도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이것은 각 말씀의 의미를 해석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쓰여진 글 속에 담겨 있는 성령님의 본 뜻을 파악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되려면 먼저 성경을 읽는 사람은 객관적이어야 한다.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은 성령님의 의도를 읽기 힘들다. 성경이 강조하는 부분은 다양하다. 어떤 곳에서는 사실에 강조점을 두고 어떤 곳에서는 영과 정신을 강조하며 어떤 곳에서는 사상(교훈)을 강조한다. 그러나 어디에 강조점을 두든지 간에 이 세 가지 요소(사상, 사실, 영)는 다 나타난다. 예를 들어 사상을 강조한 곳이라 할지라도 거기에는 사실과 정신이 나타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각을 성령의 생각과 일치시킬 때 우리는 성경을 전체적으로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앞에서도 말했지만 상당한 훈련을 필요로 한다. 많은 사람들이 단 10분 동안이라도 성령의 생각을 따르기 어렵다. 조금 성령의 생각을 따라가려고 애쓰다가 얼마 안 가서 어느 새 자기 생각에 휘말려버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 자체가 하나님께 처리를 받지 않으면 안된다.
성경을 공부하는 동안 우리가 항상 생각해야 하는 것은 성령의 생각이 어디로 흐르느냐 하는 것이다. 마음은 내 마음을 사용하는 것이지만 그 내용(생각)은 성령님과 같은 방향으로 가야하는 것이다.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항상 "이 구절에서 성령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바가 무엇일까?" 하고 생각하는 것을 습관화해야 한다.


성경의 사상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한 단락의 말씀 안에 포함되어 있는 [주제]와 [설명] 곧 줄기와 가지를 잘 찾아서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가지를 좇아가다가 줄기를 놓치거나 줄기만 붙잡고 가지는 도외시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성령님은 언제나 글에서 주요 사상과 그것에 대한 해석을 동시에 제시하신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는 사람은 두 가지를 동시에 보아야 한다. 설명이나 해석에 이끌려 성령께서 본래의 주제로 되돌아오게 하시는 것을 놓치고 혼자 지나가 버리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만일 한 성경(예컨대 로마서) 안에 나오는 한 구절을 그 성경의 전체적인 사상 흐름과 관계없이 해석하게 되면 그 말씀은 결국 성령님의 생각과는 전혀 상관없는 엉뚱한 의미로 이해되고 만다. 그러므로 하나 하나의 말씀은 반드시 줄기가 되는 사상을 이해한 후에 그것과 연관지어서 이해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가지와 줄기를 구별하여 균형 있게 말씀을 이해하는 원칙이다.

우리의 생각이 성령님의 생각과 항상 조화를 이루도록 연마된다면 우리는 어떤 순간에 우리를 스쳐 가는 '성령의 빛'을 성령의 사상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야 할 지도 알게 된다. 우리의 생각이 훈련되지 못해서 성령의 생각 속으로 들어가지 못한 상태에 있으면 계시가 올 때 그 빛을 성령의 생각 안에서 균형 있고 온전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무언가를 보기는 보았는데 그것이 그에게 생명의 유익을 주는 것이 아니라 난데없는 엉뚱한 말을 쏟아놓는 계기밖에는 안되게 되는 것이다.


3-2.성령의 사실 안으로 들어감

성경은 그 전체 내용이 사상이나 교훈으로 구성된 것은 아니고 많은 부분이 사실과 역사, 사건에 대해 다루고 있다. 성령님은 그러한 사실과 역사와 사건들을 통하여 우리 안에 어떤 인상 곧 하나님이 전달하시고자 하는 어떤 느낌을 갖게 하신다.

성경의 여러 사실들 안에서 흘러나오는 인상은 각 사건의 내용 자체보다는 그것의 특징과 관련된 것이다. 그 특징을 발견하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 사건을 통해 우리에게 특별히 말씀하시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게 된다.

신약에는 여러 종류의 글이 있는데 복음서가 있고 서신서가 있고 사도행전과 계시록도 있다. 이 중 서신서를 읽을 때 우리는 특히 성령의 생각 안으로 몰입되어야 한다. 그러나 복음서나 사도행전을 읽을 때는 거기에 기록된 각 사실과 사건들에 정통하여 이 사실과 저 사실의 차이를 알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의 영은 하나의 시스템과 같은데 가장 좋은 것은 각각의 상황에서 그때에 맞는 시스템이 작용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려면 우리 영이 예민하고 민감하게 작용하도록 개발되어야만 한다. 거친 영혼은 성경을 읽을 때 거의 아무런 인상도 받지 못하며 이 말씀을 읽을 때나 저 말씀을 읽을 때나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 전쟁을 하는 사람의 정서와 시를 쓰는 사람의 정서가 같지 못한 것처럼 단련된 영을 가진 사람과 무딘 영을 가진 사람의 분별력 및 성경 이해의 정도는 결코 같지 않다.

그 마음(영)이 하나님을 향해 활짝 열린 사람은 그 영혼의 감도가 고도로 개발되어 성경의 어떤 사실을 접할 때 거기서 매우 강렬한 인상을 받는다. 이렇게 영적으로 민감한 사람은 성경을 읽을 때 그 부분에서 하나님이 강조하고 계시는 강조점이 무엇인지 어렵지 않게 직감할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어떤 하나의 작은 사실 가운데서 말씀하시려고 하는 것과 전체를 통해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의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어쨌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 지울 수 없는 깊은 인상을 남기시려면 우리의 영은 부드럽고 민감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말씀의 전체 윤곽 뿐 아니라 가장 세밀하고 은밀한 부분까지도 포착할 수 있다.


3-3.성경의 영 안으로 들어감

성경을 깊이 이해하려면 단지 성령님의 생각과 사실에만 몰입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며 반드시 말씀 속에 있는 영(정신)에 깊이 접할 줄 알아야 한다. 성령님께서 사람을 감동하여 사실(사건)이든지 사상(교훈)이든지 간에 기록하게 하셨을 때 그 각 내용 속에는 영이 담겨져 있다. 이것은 각 책(예컨대 로마서)은 물론이고 각 구절에도 그러하다.

성령님은 그 느낌을 사람의 영을 통해 나타내신다. 바울의 글은 성령님으로부터 단련을 받은 바울이라고 하는 사람의 영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표현이다. 바울의 글은 곧 바울의 영의 표현이며 바울의 영을 통해 표현된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그를 접하려는 사람은 반드시 영으로써 나아가야 한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는 사람은 반드시 그 영이 살아 있어야 하며 그 영으로 성경의 영(성령의 정신)에 접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말씀 배후에 있는 영에 접할 수 있는가? 먼저 알아야 할 사실은 영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 인간적인 노력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전적으로 우리가 성령님으로부터 다루심을 받아서 우리 영이 살아 있고 활발하며 예민한 상태에 이르도록 개발되어짐으로써만 가능한 일이다.

성령의 단련이란 무엇인가? 이것은 우리의 영이 성경의 영 즉 성령님과 연합하여 일체로 교통하도록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루시며 생명을 공급하시는 역사이다. 사람의 영이 하나님의 영과 완전히 똑같이 되기는 어렵다. 그러나 적어도 어떤 부분에 있어서 공감할 수는 있게 된다. 성경을 공부하는 우리의 목적은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거기에 순종하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현재 필요와 관심은 우리 존재가 하나님과 일체가 되느냐 못 되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과 요구를 아는 것, 하나님의 마음과 정신을 아는 것, 바로 이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오랜 시간을 주님(성령님)을 따라가다 보면 저절로 되는 일이다.

우리 영이 성경의 영(성령님)과 일치하며 호흡을 같이 하기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일은 우리가 매일 매 순간 영으로 사는 것이다. 날마다 실제로 영을 좇아 사는 것이 훈련되지 않은 사람은 성경을 읽을 때도 성경의 표면적인 문자만 볼 수 있을 뿐 그 영은 보지 못한다. 그러므로 성경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좋은 훈련은 우리 인격이 그리스도의 형상에 이르도록 성령님으로부터 단련을 받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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