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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는 이 말씀에서 육체를 위하여 심는다는 것은 육체에다 심는다는 말과 같다. 육체에다 심는다는 것은 육체의 원함과 갈망을 따라 육체를 위하여, 즉 육체의 기쁨과 영광을 목적으로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다. 반대로 영을 위해 심는다는 것 곧 영에다 심는 것은 영의 필요와 요구에 따라 영이 원하는대로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다.

육체는 아담의 생명으로 태어난 우리 옛 사람(자연인)이고 영은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새 사람이다. 그러므로 육체를 위하여 심는다는 것은 간단히 말하면 자연인의 성품과 기호대로 사는 것이고 영을 위하여 심는다는 것은 거듭난 아들의 생명대로 사는 것이다.

인생은 육체를 위해 심으면 육체로부터 인생의 결실을 거두고 영을 위해 심으면 영으로부터 결실을 거둔다. 육체로부터 거두는 것은 육체뿐이다. 그것은 영원한 것이 아니며 늙어지고 사라져 가는 것이다. 육체에다 심은 사람이 인생 최후에 거두게 될 열매는 늙고 병든 가죽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따라 행함으로써 영에다 인생을 심은 사람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아들을 얻게 될 것이다.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은 다 심는 것이다. 집과 교회와 학교와 직장에서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이 다 무엇인가를 심는 것이다. 부모가 자녀들에게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이 자신과 자녀들에게 심는 것이다. 친구에게, 형제에게, 남편이 아내에게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이 다 심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삶은 전적으로 농사와 같다. 우리가 무엇을 보고 들으며 무엇을 생각하는지, 누구를 만나며 무슨 물건을 쓰며 무슨 일을 하는지 이 모든 것이 다 심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것이 다 육체를 위하든지 아니면 영을 위하든지 둘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모든 타락과 실패는 (사탄으로부터 오는) 작은 시험 곧 작은 미혹으로부터 시작한다. 마귀의 미혹은 사람의 생각을 허망하게 만들어 하나님과 자신을 속이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속임을 당하지 않으시며 사람 역시 (그 하나님의 생명이 속에 있음으로 인해) 진리를 거스려 행할 수 없건만 사탄에게 미혹 당한 사람은 마치 그것이 가능한 것처럼 하나님과 자신을 속이려 드는 것이다. 하나님과 자신을 속이는 삶이란 신자가 하루 하루 실제의 삶에서는 온통 육체대로, 육체를 위하여 행하면서 나중에 영적 결실을 거두리라 기대하는 것이다.

사람이 만일 정신을 차려서 항상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있는 그대로 보고 자신이 누구인지를 있는 그대로 볼 줄 안다면 이런 미혹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갈5:24)라는 말씀은 우리가 누구이며, 따라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며 할 수 없는 일이 무엇인지를 말해준다.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육체대로 살아서는 안되며 살 수도 없는 사람이다.  

우리는 우리의 말과 행동, 심지어 태도와 생각에 있어서까지 전적으로 영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 매사에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육체의 즉흥적인 감정과 기분을 따라 행해서는 안된다. 영과 진리 안에서 행한다는 확신이 없이 행동하는 것은 곧 육체를 따라 육체에다 심는 것이다. 우리가 오늘까지 살면서 직면하고 있는 모든 어려운 문제는 모두 우리가 영을 따라 행하지 않고 그때그때 떠오르는 육체의 즉흥적인 생각과 감정을 따라 행한 결과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나 지금 겪는 실패는 아무 것도 아니다. 만일 인생 전체를 온통 육체대로 행하고 육체에다 심다가 최후의 순간에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게 되는 그 자리에 선다면 우리는 정말로 망하는 것이다.

씨는 매우 작지만 그 거두는 것은 매우 큰 것이다. 우리는 다만 뿌린 대로 거둘 뿐 아니라 작은 것을 뿌리지만 큰 것을 거둔다는 이 교훈을 잊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매일 작은 것을 뿌린다. 사소한 잡담이나 한담, 별 생각 없이 남을 판단하고 비난하는 말을 하는 것이 그 사람 생각에는 아무 것도 아닌 일이지만 그것은 곧 말하는 사람 자신과 그것을 듣는 사람에게 사망을 심는 일이며 따라서 마침내 사망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지 않으면 안된다. 작은 말, 언제 그런 말을 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 사소한 말이 다 우리가 뿌리는 씨다. 어떤 사람과 말을 주고 받다가 충돌이 일어날 때 주님은 우리 안에서 내가 잘했든지 잘하지 못했든지 사람과 시비를 가리지 말고 조용히 주님을 기다리며 그의 음성을 들으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거기에 순종하지 않고 감정을 따라 논쟁하고 다투고 정죄하고 비난할 때 우리는 확실하게 육체를 위하여 육체에다 사망을 심는 것이다.

결혼 생활에 있어서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무심코 혹은 습관적으로 혹은 의도적으로 육체를 따라 육체에 심는다. 이것이 누적되면 결국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게 된다. 많은 부부들이 열렬히 사랑함으로써 결혼 생활을 시작하지만 육체에 심는 일을 거듭한 결과 마침내 별거나 이혼에 들어간다. 자녀를 처음 낳았을 때 부모도 아이를 뜨겁게 사랑하고 아이도 부모를 기쁨으로 추종하지만 서로가 육체대로 행하고 육체대로 심은 일을 계속 한 결과 나중에는 서로 말도 하지 않고 원수와 같이 괴롭게 되는 결실을 거두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이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자기는 전혀 그런 결과를 초래할만한 일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알고 보면 모두가 영을 좇아 행하지 않고 육체대로 행한 것이다. 어떤 특별한 일을 해야 썩어진 것을 거두는 것이 아니고 다만 육체대로 행하면 그렇다.

교회 생활과 결혼(가정) 생활은 둘 다 육체적 일이 아니라 영적 일이다. 왜냐하면 교회 생활이나 결혼 생활이 다 '둘이 하나 되는' 연합을 추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하나가 된다는 일은 육체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결혼한다고 해서 (육체적으로) 두 몸이 한 몸이 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결혼은 영적인 것이다. 영이 하나 되는 것이 진정한 연합이다. 교회 생활만 영적 일이 아니고 결혼 생활 및 부모 자식이 서로 사랑하며 함께 사는 이 모든 일이 다 영적 일이다. 영적 일은 반드시 영적 원리를 따라 해야 제대로 된다. 영적 일을 영을 좇아 행하지 않고 육체를 따라 육체대로 행하면 반드시 실패하게 된다.

많은 경우에 성령을 좇는 일은 인내 심지어 절망감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기다림은 육체를 지루하고 답답하게 만든다.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따라 이렇게 저렇게 정치를 해버리면 속 시원하겠는데 하나님의 인도를 기다리며 생각을 접고 손을 접고 앉아 있을 자주 해야 하는 것이 바로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의 삶이다. 만일 이것이 답답하고 힘들어서 정치를 해버리고 감정과 혈기대로 해버리면 우리는 육체를 따라 심는 것이며 육체에다 심는 것이다. 이때 육체는 강성해지고 힘을 얻고 살찌겠지만 영은 마르고 쇠해진다. 눈 앞에서 일이 생각대로 속 시원하게 확 처리되고 나면 우리 육체는 날아갈 것처럼 힘을 얻고 뿌듯함을 얻겠지만 나중에 가보면 그것은 다 사망을 축적하는 일 외에 아무 것도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육체대로 행함으로써 일을 잘 처리했다고 생각한 것들이 지나고 나서 보면 얼마나 일을 망치고 사람을 망쳤는지!

우리가 교회 생활을 할 때 형제에게 말하고 행동하고 태도를 가지는 이 모든 일에 영으로 심으면 그것은 영에다 심는 것이요 영에다 영생의 씨를 뿌리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매일 영으로 심고 또 영으로 심을 때 여기 있는 우리 모두의 영은 살찌고 강건케 되어서 다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아들들로 드러나게 될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서로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큰 기쁨과 행복을 맛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육으로 심으면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사람들이 변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진다 하더라도 영으로 심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우리가 서로 말씀을 전하고 간증과 권면을 하더라도 그 전파하는 말씀이나 간증이나 권면을 따라 하나님의 영이 함께 나가지 않는다면 그 말씀들은 아무 역사도 하지 못한다. 많은 교회에서 설교가 행해지고 있고 성경 공부가 행해지고 있어도 그 좋은 말씀과 권면과 상관없이 다툼과 분열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각 지체들이 서로에 대해 영을 따라 행하지 않고 육체를 따라 행하기 때문이다. 영을 따라 심지 않고 육체를 따라 심는 사람이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갈5:19,20에서 말한 육체의 일)을 거두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일한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고 사랑한다고 해서 다 되는 것이 아니다. 일을 해도 영을 좇아 영에다 일을 해야 하고 사랑을 해도 영을 좇아 영에다 사랑을 쏟아야 한다. 남편과 아내는 각각 자신들이 서로에 대해 무엇을 기대하며 무엇을 요구하며 무엇을 해주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외적인 아름다움과 외적인 영광, 외적인 부와 외적인 강건함을 요구하고 독려한다면 혹 그것을 얻을지라도 거기서 최종적으로 썩어질 것 말고 아무 것도 거두지 못할 것이다. 또한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지금 무엇을 기대하며 무엇을 요구하며 무엇을 독려하고 무슨 환경을 조성해주고 있는지 깊이 돌아보아야 한다. 영을 따라 사람을 사랑하고 영을 강건하고 온전하게 하기 위해 사랑을 쏟는다면 영으로부터 영생을 거둘 것이고 육을 따라 육적인 사랑을 쏟으면 육적 사랑의 결과인 썩어진 것을 거두게 될 것이다. 많은 아내들이 남편의 출세와 부와 권력을 갈망하며 그것을 위해 헌신했지만 그 결과 모든 것을 거머쥔 남편은 아내를 멸시하며 떠나버렸다. 자식의 성공을 바란 많은 부모들이 자녀들의 학업 성취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며 주위의 비난과 자식의 원성을 감수하며 노력하지만 결국 남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 이르고 만다. 그 목표가 달성되어 자녀들이 성공해도 부모에게 돌아오는 것은 결국 허무함밖에 없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 목표 자체도 달성되지 못함으로써 이중적인 허탈감에 빠지고 만다.

교회 생활에 있어서 우리는 더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하루 하루 영을 좇아 행하며 영에다 인생을 심어 가는 사람은 날마다 진보하고 그 생명이 충만해질 것이지만 별 생각 없이 육체를 따라 말하고 육체를 따라 행하는 사람은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생명의 손상을 입히게 될 것이다. 어떤 가정이나 교회에나 소위 자유를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인도 아래 있다는 것이 곧 권위에 복종하는 문제라는 사실을 느낄 때마다 거기서 벗어나고 싶어한다. 이런 사람들은 영의 통제에서 벗어나 육체가 원하는 것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분위기를 원한다. 이런 사람들이 많이 있으면 교회 생활은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여기서 선을 행한다는 것은 영을 위해 심는 삶 곧 영을 좇아 행하는 것을 가리킨다. 선을 행하면 즉 영을 좇아 행하면 영으로부터 선한 결실을 거둔다. 그러나 이 결실은 생명의 결실이므로 매우 천천히 맺힌다. 육체에 심은 씨는 빨리 자라지만 영에 심은 씨는 느리게 자란다. 그래서 낙심하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더욱이 고등 생명은 하등 생명보다 더 느리게 성장한다. 어떤 동물들은 임신 기간이 한 달밖에 안되지만 사람은 9달이나 된다. 그것은 그만큼 크고 영광스러운 생명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우리가 심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가 기대하는 열매는 무엇인가? 그것은 금방 자라서 금방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심고 키우는 것은 영생이다. 이것은 우리의 생명(인격)이며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스러운 생명이다. 우리가 주님을 위하여 일한다는 것은 곧 형제들을 섬겨서 살게 하는 것인데 이 일은 사람의 수명만큼 오래 걸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조급하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농부와 같이 지긋하고 느긋하게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심겨진 것이 귀할수록 자라는데 시간이 걸리고 돌보는데도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아무 변화가 없는 것같이 보이는 동안에도 그것은 자란다. 우리 영혼도 그렇고 형제들의 생명도 그렇다. 그러므로 인내하고 낙심하지 말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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