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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한 인생 (1) (갈6:1-8) / 2003. 2. 2

2010.05.03 10:11

이상봉 조회 수:3778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 잡고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만일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니라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만 있고 남에게는 있지 아니하리니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임이니라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1.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함

우리는 교회에서 어떤 형제가 범죄를 저지르거나 잘못(실수)을 했을 때 다만 그러한 행위(일)를 바로 잡을 뿐 아니라 그 형제 자신도 바로잡아야 한다. 죄나 잘못된 행위를 바로잡는다는 것은 그런 행위를 합당치 않은 것으로 판단하여 정죄함으로써 하나님의 공의와 교회의 거룩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범죄한 형제 자신을 바로잡는다는 것은 형제를 하나님께 진실하고 합당한 사람으로 세우는 것이다. 이것은 공의의 심판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랑 안에서 서로 짐을 지고 섬기는 것을 통해서 되는 것이다.

우리가 (내 잘못이 아닌) 형제의 잘못으로 인해 우리 자신까지 돌아보아야(반성해야) 하고 형제의 짐을 나누어 지기까지 해야 하는 것은 그와 내가 하나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 생명이다. 사람이면 다 그 영광과 실패가 같고 강함과 약함이 같다. 특성이 같은 고로 같은 시험에도 얼마든지 빠질 수 있는 것이다. 더구나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에 (같은 성질을 지닌 인류라는 차원의) 일반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특별한 의미에서 진실로 하나이다. 몸의 지체들이 절대적인 공동 운명체인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은 모두가 다 한 운명체로서 이 땅에서나 다음 세계에서나 모든 것을 같이한다. 그러므로 서로 돌아보고 서로 잡아주고 서로 섬김으로써 서로 서로 세우지 않으면 안된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은 이 땅에 계실 때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셨고 또한 당신의 사람들 곧 주님을 진실로 따르는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 그는 대단한 사람이든 비천한 사람이든 의인이든 죄인이든 '사람이면 그는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계셨다. 그 어떤 법(율법)보다 '사람의 생명이 살아야 하고 풍성케 되어야 한다'는 이 법이 우선했다.

그리고 주님은 당신이 추구한 그 생명이 단지 떡을 먹고 배부르면 다 되는 육신의 생명이 아니라 하나님과 영원히 거처를 함께할 수 있는 참 아들의 생명 곧 하나님께 대해 살아 있는 영적 생명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이 생명을 불어넣고 풍성케 하는 일에 모든 힘을 기울이셨다. 그는 이 일을 위해 심지어 육신의 생명이 환난을 겪게 되더라도 그것을 합당하게 여기셨다. 우리는 다시 한번 그리스도의 법 곧 '주님의 마음을 항상 지배하고 있던 그 하나의 法은 무엇이었는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것은 생명의 법이었다. 사람을 살리고 더 살리고 더 풍성케 하는 그것이 주님의 법이었다. 다른 모든 법은 결코 그것을 우선할 수 없었으며 다 그것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었다. 안식일 준수의 법도, 간음한 자를 돌로 쳐서 죽여야 하는 법도 이 (그리스도의) 법보다 앞서지 못했다.

2.자신을 앎

"만일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니라"
우리가 범죄한 형제를 다만 정죄하는데서 그치고 그를 세워서 온전케 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않는다면, 그리고 범죄한 형제를 다만 정죄하는데서 그치고 자신을 돌아보아(반성하여) 모든 삶을 더욱 철저하게 주님께 의뢰하는 자리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그리고 형제의 짐을 함께 짐으로써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않는다면 우리는 망상에 빠져서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것이다. 자기가 누구인지를 모르는 것이며 교회가 무엇인지, 인간이 무엇인지, 죄인의 속성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아무 것도 되지 못했으면서도 자기가 무엇이나 된 줄로 생각하여 자신을 스스로 높이는 이 교만의 마음은 참으로 패망의 선봉(先鋒)이요 멸망의 전조(前兆)이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어떤 범죄와 시험(실패)보다 (우리 모두가 한 몸의 지체요 각 지체들은 공동운명체라는 것을 모르는) 이 무지와 (다른 사람이 다 없어도 나 혼자 살 수 있고 설 수 있다는) 이 교만이 더 무서운 범죄와 실패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마음은 결국 온 몸을 무너뜨리고 만다.

자신이 모든 것을 판단하고 모든 것을 정죄하고 모든 것을 심판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형제들과 자신이 다르다고 생각하는 사람, 형제들이 있으나 없으나, 승리하나 실패하나 나와는 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이런 사람은 참으로 무지하고 어리석은 사람이다. 형제를 긍휼히 여기고 용납할 줄 모르는 사람, 형제의 짐을 져주지 않는 사람의 마음 속에는 결국 이런 무지와 망상이 들어 있다. 이것은 진실하지 않은 것이다. 거듭난 참 그리스도인이라면 그의 생명 안에는 이미 자신이 누구인지를 말해주는 음성이 항상 들려지고 있을 것이다. 사탄의 거짓말에 속아 교만과 망상에 빠져 있지만 않다면 그리스도인은 그 속에서 들려지는 이 음성을 모른다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진리로 자신을 일깨우며 서로 일깨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 속거나 스스로를 속여서 망령된 행실을 하게 된다.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만 있고 남에게는 있지 아니하리니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임이니라

자랑이나 수치는 어떤 기준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다. 이 이상이면 자랑스럽고 이 이하면 부끄럽다는 식이지 그냥 자랑이 되거나 수치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자랑의 근거가 되는 기준은 무엇인가? 이 기준은 '생명'(영생)이다. 우리 생명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며 이 생명의 길(삶) 역시 하나님이 정해놓으신 것이다. 우리 삶이 하나님이 정해놓으신 참 인생의 길에 합당하면 그것은 자랑스럽고 그렇지 못하면 그것은 부끄러운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러한 기준을 따라 자랑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기들 마음대로 인생의 자랑과 영광의 기준을 정해놓고 그것을 따라 서로 자랑하고 부끄러워하며 서로 칭찬하고 멸시한다.

우리가 사람의 기준을 따르지 않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하여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 우리는 하나님께나 사람에게나 별로 자랑할 것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여 할 말은 오직 "저를 지으시고 부르셔서 이런 복된 삶을 살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는 찬양과 감사의 말뿐이며 또한 형제들을 향하여 할 말 역시 "당신이 필요합니다, 나와 같은 생명을 지닌 당신이 귀하고 사랑합니다" 하는 이 말밖에는 별로 할 말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자랑이라는 것은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이 영원한 생명에 대해 무언가 기여를 했거나 남에게 많은 것을 줄 수 있을 때 하는 것이지 오직 은혜로 모든 것을 받고 형제들의 사랑과 섬김 안에서 겨우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 (이런 자랑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랑은 자신에게 하면 딱 알맞다. 사실 우리 생명은 너무 자랑스럽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행하신 역사는 거지를 왕자로 만드신 것 이상이다. 전에 지옥의 자식이요 정욕의 노예였던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하늘의 보좌에 앉아 영광스러운 아들로 살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멋지고 자랑스러운가! 우리는 이것을 자신에게 자랑하며(자랑스럽게 생각하며) 또한 하나님께도 은근히 자랑할 수 있고 형제들에게도 자랑할 수 있다. 이것이 찬양이고 간증이다. 그러나 이러한 자랑은 사실 자기 자랑이 아니라 하나님 자랑이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복된 생명을 자랑하는 것이다. 우리의 자랑은 이까지여야 한다. 여기서 그쳐야 한다. 그 이상 더 나아가서 육체에 속한 헛된 자랑이 나와서는 안된다.

물론 우리 각자에게는 나름대로의 육체적 자랑거리도 있다. 그러나 우리 생명은 이것이 자랑거리가 되지 못함을 우리에게 말한다. 아이들이 딱지를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이 어른들이 볼 때 자랑거리가 되지 못하는 것처럼 육신의 능력과 지혜와 업적은 영의 생명에게 자랑거리가 되지 못한다. 육체의 영광은 들의 꽃과 같이 시들어지고 사라지지만 썩지 아니할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난 우리 영의 생명은 영원하다. 이것만이 자랑할만하며 나타낼 가치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 육체로 자랑해서는 안되며 육체로 부끄러워해서도 안된다. 육체로 자랑하거나 부끄러워하는 사람은 진실하지 않은 것이다. 그 자신에게 즉 그 영에게 진실하지 않은 것이며 하나님께 진실하지 않은 것이며 형제들에게도 진실하지 않은 것이다. 하나님과 우리 영은 처음부터 우리에게 그 모든 것이 나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사실과 그 모든 것이 결코 영원하지 않으며 곧 썩어지고 사라질 허무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계속 말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남의 짐을 질 뿐 아니라 자신의 짐도 항상 져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흔히 하는 말로 내 코가 석자나 빠졌다는 것이다. 우리가 남의 짐을 지는 것은 내 짐을 지는 일의 연장이고 확대이다. 나의 연약함을 알기에 (주님께 육신의 연약함을 맡기는 일을 통해서) 내 짐을 지고 또 형제의 짐을 나누어지는 것이다. 이것이 생명의 법대로 사는 삶이며 진실한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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