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llde1
slide2
slide3
slide4
창세기

안식하신 하나님 (2) / 창2:2,3

2010.05.03 14:54

이상봉 조회 수:3691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安息)하시니라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창조 후 하나님이 안식하실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그의 아들)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권위를 행사하여 하나님의 모든 뜻을 이루고 그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안식하실 수 있었던 것이다. 사람의 일에는 하나님의 원수인 마귀를 멸하는 일까지 포함되어 있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고 하나님의 원수를 처리하는 한 하나님은 안식하실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단지 그의 일을 마치셨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을 지으심으로 그의 모든 뜻을 이루시게 되었으므로 안식하신 것이다.

그런데 창조의 안식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완전하고 영원한 안식이 아니라 그것의 예표인 작은 안식에 불과하다. 이 안식은 점점 커져서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부분에 제시된 것과 같은 완전한 안식이 된다.

성경에는 몇 가지 안식의 예표들이 있다. 구약의 {안식일}은 그 대표적인 것이다. 구약 시대에 있어서는 오직 안식일을 지킴으로써만 하나님의 이 영원한 안식을 맛볼 수 있었다. 그리고 신약에서는 '주의 날'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계1:10)

"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저희에게 강론할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행20:7)

"매주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고전16:2)

이러한 주의 날은 다가올 안식의 예표이다. 교회와 성도들은 주님의 생명을 누림으로써 하나님을 나타낸다. 이것은 하나님의 안식을 표현하는 것이다. 교회와 성도들은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하나님의 원수를 처리하고 진리를 세움으로써 하나님의 권위를 행사한다. 여기서 안식이 나오는 것이다. 만일 형제들이 그렇게 하지 못하고 서로 다투고 싸운다면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생명이 흘러나오지 못하기 때문에 안식은 없게 된다.

우리가 지금 경험하는 안식이 비록 완전한 안식이 아니라 그것이 오기 전의 맛보기 안식에 지나지 않는다 할지라도 이것은 세상에는 없는 천국적인 것이며 소중하다. 우리가 이 안식을 분명하게 경험하려면 첫째, 하나님과의 생명 안에서의 교제가 분명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둘째, 그러한 교제는 교회에서 형제들과 생명의 교제를 가질 때 더욱 확실하게 되기 때문에 형제들과의 교제도 분명하게 가지도록 해야 한다. 몸은 전체 지체의 조화로운 결합이 유지될 때만 편안할 수 있는 것처럼 우리도 형제들 안에서 자기의 은혜의 분량대로, 은사대로 봉사해야 한다.

우리의 안식은 주님의 섬김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주님은 어떻게 그렇게 자기를 희생하며 넉넉히 우리를 섬기실 수 있었는가? 그 역시 안식하셨기 때문이다. 그는 어떻게 고난 중에서 안식하실 수 있었는가? 참으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이다. 교회에서의 안식의 원리도 이와 같다. 한 형제의 안식은 다른 형제들이 십자가를 지고 그를 섬길 때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 다른 형제들의 안식은 십자가를 지신 주님을 바라보는데서 얻어진다. 그리고 주님의 안식은 아버지가 자기를 사랑하시고 모든 것을 공급하시는 데 근거한다. 이렇게 하여 교회 안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여유와 안식을 얻게 된다.

가정이나 교회에서 우리가 어떤 때에 안식하며 어떤 때에 안식하지 못하는가를 생각해 보면 안식의 근거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환경이 좋으면 나쁠 때보다 비교적 쉼을 얻을 수 있지만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다. 환경이 좋아도 믿음이 없으면 안식할 수 없으며 환경이 나빠도 믿음이 있으면 안식할 수 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면 안식이 없고 하나님의 진리를 거부하고 세상의 헛된 욕망과 탐욕에 사로잡혀 있으면 안식이 없다.

더 나아가서 세상에서 어떻게 사람들로부터 사랑과 인정을 받든지 간에 하나님의 사랑과 인정을 받지 못하면 안식이 없으며 세상에서 그의 소망이 얼마나 성취되든 영원한 하나님의 뜻을 알고 거기에 참여하지 못하면 안식은 없게 된다. 우리가 깊이 알아야 할 것은 사람들의 사랑과 인정을 통해서 받든지 아니면 성령님의 직접적인 위로와 감동을 통해서 받든지 하나님의 사랑과 인정을 받기 전에는 우리는 결코 안식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정이 없으면 안되며 또한 하나님의 인정이 있으면 사람의 인정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것이므로 과도히 그것을 추구해서는 안된다.

진리가 없으면 정함이 없는 삶을 살 수밖에 없고 거기서는 결코 안식이 있을 수 없다. 우리는 헛된 생각에 사로잡혀 세상적인 것들을 과도히 추구해서는 안된다. 거기에서 다툼이 나오고 마음이 상하게 된다. 특별히 어떤 이유로든 사람들과 다투면 안식은 없다. 설사 자기가 옳고 바르다 할지라도 하나님께 그것을 인정받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사람으로부터도 그것을 인정받으려고 마음을 쓸 때 우리는 안식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모든 안식은 하나님으로 말미암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안식조차 이 세상에서는 우리에게 완전하게 전달되지 못할 경우가 많기 때문에 우리는 장차 나타나게 될 하나님의 나라에서의 완전한 안식을 기대하며 아무 것도 불평하거나 원망해서는 안되며 어떤 일로도 마음이 상해서는 안된다. 마땅히 인정받아야 할 사람으로부터 도리어 어려움을 당하게 될 때 우리는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고 사탄이 하나님의 안식을 방해하려고 시험하는 것인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그럴 때 우리는 실망하거나 불평 원망하며 시비를 가리고 다투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도리어 그럴 때 우리는 그에게 안식을 주는 제사장으로서 주님께 나아가 주님의 권위를 구사해야 한다. 절대로 물리적인 권위를 행사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천국의 안식은 교회의 안식으로 예표된다. 그러므로 교회는 믿음으로 반드시 안식을 나타내어야 한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 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엡3:17-21)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엡6:10-17)  

교회 생활은 사탄을 결박하고 그의 모든 권세가 무너졌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으로 나타나야 한다. 사망 권세의 죽음과 모든 거짓과 세상 영광이 죽었음을 나타내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말 한 마디라도 올바르게 하지 않으면 안된다. 교회에서는 주님을 찬양하고 주님이 이루신 승리를 노래해야지 인간을 말해서는 안된다. 인간의 실패와 다툼, 육신의 연약함을 말해서는 안된다.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