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llde1
slide2
slide3
slide4
창세기

혼의 잠재능력 / 창2:8-20

2010.05.03 14:56

이상봉 조회 수:4008

타락하기 이전의 아담의 상태와 타락한 이후의 오늘 우리의 상태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아마도 환경면에서는 큰 차이가 있겠지만 사람 자신의 여건이나 능력면에서는 별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물론 아담이 할 수 없었던 일은 오늘 우리도 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아담은 할 수 있었던 것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즉 아담이 할 수 있었던 일을 타락한 후의 우리는 할 수 없는 경우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1:27,28)
땅을 정복하라니! 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우리는 땅이 얼마나 넓은지조차 알지 못하고 있다. 만일 어떤 주인이 그의 종에게 집 두 채를 맡겼다면 우리는 일반적으로 그 종의 능력이 그 정도를 감당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만일 그것이 그에게 어렵고 버거운 일이었다면 주인은 일부분만 관리하게 하든지 아니면 아예 아무 것도 맡기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감당할 수 없는 일을 맡기신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땅을 관리하도록 위임받은 아담의 능력이 오늘 우리보다 월등히 뛰어났을 것이라고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아담은 육신적 힘이 강했을 뿐 아니라 정신력도 오늘 우리보다 훨씬 탁월했을 것이 확실하다. 나는 우리 집을 관리하는데도 힘이 든다. 청소를 제대로 하고 식구들에게 최소한의 봉사를 하는데도 하루 반나절이 소용될 정도이다. 하물며 온 땅과 거기 거하는 모든 생물에게 손을 펴서 다스리는 일을 하는 것은 얼마나 광대하고 큰 일이겠는가?
아담이 다스린 땅에는 바다의 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 위의 모든 생물이 포함되어 있다. 물론 오늘 우리 입장에서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다스리라고 하신 말씀의 내용이 정확하게 무엇인지는 알기 어렵다. 그리고 그 다스림이 반드시 육체적 노동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 활동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아담의 다스리는 일이 그렇게 힘든 일이 아닐 수도 있다는 짐작을 해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적게 잡아도 아담의 일은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큰 일임을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땅을 다스리라고 했을 때 그 다스리는 일에는 만물을 하나님의 뜻에 맞도록 조화있게 다스리는 일뿐 아니라 원수 마귀를 제어함으로 악의 세력이 땅에서 활동하지 못하게 하도록 하는 일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땅을 다스리는 일은 결코 노는 일이 될 수 없으며 쉬운 일도 아니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것은 엄청한 육체적 힘과 정신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아담이 지닌 힘은 대단한 것이었음이 분명하다.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창3:19) 라는 말씀이 타락한 이후에 주어진 것을 보면 타락하기 전에 아담은 일을 하고도 피로를 느끼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아담이 지닌 정신력, 즉 그의 지력과 기억력에 대해 생각해 보자. 아담의 머리는 매우 탁월한 것이었음이 분명하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창2:19) 이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우리는 동물의 종류도 이름도 다 알지 못한다. 어떤 동물이 어떤 종류인지, 어떤 특성을 지녔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동물도감이나 사전을 보지 않으면 안된다. 더구나 그런 책을 펴 놓고 동물들의 이름을 살펴 보았다 할지라도 몇 번 보아서는 동물들의 특징과 속 사정을 그 형편대로 정확하게 알아서 '너는 이런 동물이며 너는 저런 동물이구나' 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도 동물들의 종류가 많아 여러 해 집중적으로 그것들에 대해 공부하지 않으면 우리는 아마 그 이름들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아담은 모든 새와 짐승에게 이름을 붙여주었다.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너는 1번, 너는 2번, 너는 개똥이 너는 똘똘이' 하는 식으로 부를 때 편리한 것을 목적으로 되는대로 이름을 붙이는 것이 아니라 각 동물들의 특성을 따라 합당하게 이름을 붙여주는 것이다. 혹시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동물들의 이름을 계시받아서 그대로 붙여주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느 것이든 모든 동물들을 다 알고(기억하고) 그 특징에 따라 맞는 이름을 붙여주여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니 그 일이 얼마나 대단하고 엄청난 일인가? 여기서 우리는 아담의 이성적 능력, 지력이 얼마나 뛰어나고 완전한 것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또 아담의 육체적 능력도 뛰어난 것이었음에 틀림 없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창2:15) 하나님이 아담에게 하라고 명하신 일에는 에덴 동산을 다스리는 일이 포함되어 있었다. 에덴 동산이 얼마만한 곳이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 땅은 비손과 기혼, 힛데겔, 유브라데라는 네 개의 강으로 둘러싸인 곳이었다. 아무리 손바닥만한 땅이라도 네 개의 강이 흐를만한 땅이라면 그 땅을 다듬고 가꾸어 온전히 유지하는 일이란, 더 나아가서 (누구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원수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지키기까지 하는 일이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아담의 능력은 틀림없이 굉장한 것이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그런 힘을 주시지 않았다면 하나님은 그에게 그런 일을 맡기지도 않았을 것이다.

오늘 우리의 입장에서 볼 때 당시 아담이 지닌 이런 능력은 초인적이며 기적적인 능력이라 할만하겠지만 아담에게는 그것이 초인적이거나 기적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적이고 자연스러운 능력이었다. 그런데 아담은 그 당시 자신의 힘을 다 써버렸는가? 짐작컨대 아담은 그의 힘을 다 써 보지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그의 힘을 다 발휘하기 전에 타락해 버렸기 때문이다.

사탄은 무슨 미끼로 하와를 꾀었는가? 그것은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게 된다"(창3:5)는 것이었다. 하와는 이미 하나님께서 주신 큰 능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 능력은 하나님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사탄이 와서 말하기를 이 과일을 먹기만 하면 하나님과 같은 능력, 곧 하나님과 같은 지혜와 육체적 능력과 권세를 가지게 될 것이라고 한 것이다. 이 말을 듣고 하와는 귀가 솔깃해져서 그 과일을 먹음으로써 타락하고 말았다.

아담이 지닌 바 다른 피조물에 비해 탁월한 모든 능력은 그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은 데 기인하는 것이다. 그의 능력은 동물적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의 능력에 해당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원하신 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존재답게 실제로 그 자신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할 것이 아니라 이미 그 속에 받은 하나님의 영을 통해 혼과 몸을 복종시켜 하나님의 성질을 드러내도록 했어야 하는 것이다. 도덕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아담은 오늘날 타락한 우리의 모습과는 현저히 다른 탁월한 하나님의 아들의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더 바랄 것이 없었다. 그런 그가 마귀의 헛된 말에 귀 기울지 않고 그 있는 능력을 발휘하여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고 하나님의 모든 영광을 남김 없이 드러내었다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그러나 그는 타락함으로 그가 지닌 큰 권세와 영광과 능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흙에다 그의 생명을 불어넣으심으로 만들어진 생령(魂 ; living soul)이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은 여러 군데서 사람을 바로 '혼'이라고 지칭했다. 아담의 혼에는 큰 능력이 있었다. 타락하기 전에 아담의 혼은 영의 지시, 곧 하나님의 뜻을 따라 (몸을 도구로 삼아)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는 큰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타락함으로써 하나님은 이 능력을 제한시키고 말았다. 하나님의 목적대로 천하 만물을 다스리는 일을 하기를 거부하고, 대신 사탄의 말을 듣고 자신을 나타내며 높이고자 의도한 사람에게 하나님이 주신 큰 능력이 그대로 남아 있게 되면 그것은 하나님의 일을 크게 그르칠 것이 틀림없으며 사람 자신도 하나님의 의지하고 그 능력과 은혜를 힘 입을 가능성이 그만큼 적어지게 되기 때문에 하나님은 아담의 혼의 능력, 곧 강력한 정신력과 육체적 능력을 빼앗아 가 버리신 것이다.

그러나 그후 타락한 인간들에게서 간간히 드러나고 있는 놀라운 일들을 근거로 생각해 볼 때 사람에게 처음 부여된 놀라운 능력은 사람에게서 완전히 사라진 것이라기 보다는 사람 속에 감추어졌다고 보는 것이 옳다고 생각된다. 즉 아담의 놀라운 혼적 능력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제한되어 있다는 말이다.

창6:3에서 하나님은 타락하여 영이 죽은 인간에 대해 "나의 神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肉體가 됨이라"고 하셨다. 사람은 육체뿐인 존재가 아니지만 하나님 눈에는 그렇게 보였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 보였겠는가? 사람의 혼이 영의 지배를 받지 않고 육체(몸)의 지배를 받는 상태가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이제 육체 즉 동물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않는다'는 말씀은 원어상 여러 가지로 해석될 소지가 있는데 오늘날 많은 신학자들은 이 말씀을 '하나님의 영이 사람과 영원히는 다투지 않게 될 것이다'라는 말로 해석한다. 이 해석에 따르면 사람은 타락한 후 하나님과 계속 다투어왔는데 이제 그것이 끝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곧 사람이 영의 인도 받기를 계속 거부해 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땅에 심판에 선포됨으로 인해 하나님이 사람과 다투는 것도 끝나게 되었다.

그 뒤에 나오는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사람과 더 이상 다투지 않게 되는 까닭은 그들이 죽을 운명(mortal)이 되었기 때문이다' 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사람은 이제 영이 아니라 육체 즉 [죽을 운명을 지닌 동물]이다. 이것이 바로 만물을 다스릴 영광스런 하나님의 아들로 지음 받은 인간이 마귀의 꾀임에 빠져 그 지음 받은 자리를 버리고 타락한 결과 맞이하게 된 마지막 모습이다.

계18:12,13을 보면 큰 음녀의 성 바벨론에서 거래되는 상품 목록이 나오는데 이렇게 되어 있다. "그 상품은 금과 은과 보석과 진주와 세마포와 자주 옷감과 비단과 붉은 옷감이요 각종 향목과 각종 상아 기명이요 값진 나무와 진유와 철과 옥석으로 만든 각종 기명이요 계피와 향료와 향과 향유와 유향과 포도주와 감람유와 고운 밀가루와 밀과 소와 양과 말과 수레와 종들과 사람의 영혼들이라" 세상 끝에 현저히 나타나게 되는 한 현상은 사람의 혼이 사고 팔린다는 것이다. 왜 사람의 혼이 상품으로 거래되는가? 그것은 사탄이 사람의 혼을 그들의 활동 방편으로 사용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위에서도 살펴보았듯이 아담이 에덴 동산에서 타락함으로 인해 상실한 힘은 완전히 없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혼 속에 묶여 있는 것이다. 이 힘은 그 때로부터 오늘 우리에게까지 혼 속에 잠재 되어 내려오고 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어떤 사람들 속에서 나타나는 초능력의 실재이다. 이 힘은 오늘날 모든 사람에게 내재되어 있다. 그러나 이 힘은 묶여 있는 것이어서 사람들이 마음대로 쓸 수 없다.

그런데 사탄은 마지막 때에 사람으로 하여금 이 힘을 계발하여 사용하도록 부추긴다. 마귀가 사람의 혼을 뒤흔들어 그 속에 숨어 있는 힘을 풀어 쓰게 하려는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성령의 능력과 인간의 혼적인 힘을 혼동케 함으로써 진정한 성령(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지 못하게 하려는데 그 목적이 있다. 혼적인 능력을 마치 하나님이 주신 능력인양 속여서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께 주의하지 않고 자신의 내적 능력에만 주의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이것은 사탄의 고도의 술책이다.

아담에게 있던 본래의 힘이 얼마나 강한 것이든 간에 그것은 그 자신에게는 결코 특별하거나 신비적인 힘은 아니었다. 타락하기 전에 아담은 그 힘을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었다. 그의 이러한 혼적 능력은 육체에 의해 제한 받거나 방해 받지 않았다. 육체는 아담의 그런 혼적 능력을 나타내는 도구였을 따름이다. 그러나 타락 후에 육체는 혼의 강력한 힘을 제한하는 속박이 되었다. 즉 혼의 힘은 육체의 껍질에 의해 막혀 버렸다. 이제 사람은 육체의 능력 이상으로 혼의 힘을 쓸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사탄은 인간의 육체적 껍질을 깨고 그 속에 있는 혼의 잠재력을 쓰도록 사람을 부추기며 돕는 일을 시작했다. 사탄은 사람이 그의 육체적 연약함을 극복하기 위해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영의 인도를 받고 살게 되는 것을 방해하기 위해 사람의 혼 안에 있는 잠자는 능력을 풀어 쓰게 하려는 것이다. 사탄은 혼의 힘으로 하여금 영의 힘을 대신하도록 만들려고 한다. 하나님의 신이 사람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사탄의 도움으로 풀려난 혼적 능력이 사람을 다시 통제하도록 하려는 것이 사탄의 목표이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사탄의 계략을 알지 못하고 신기한 혼적 능력을 경험하고는 그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능력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믿음으로 영의 능력을 경험하는 대신 혼의 잠재력을 계발하여 인간 능력의 확대를 꾀하는 일은 오늘날 기독교 안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불교나 도교, 힌두교와 같은 일반 종교나 명상과 훈련을 통해 육체의 능력을 초월하는 어떤 신비적 경험을 하고자 노력하는 여러 집단 속에서 항상 일어나고 있다. 이들 각 집단에서 사용되는 가르침의 내용과 목적에 이르는 방법은 다 다르지만 그 여러 가지 가르침과 수단의 배후에는 공통적 원리가 흐르고 있다. 이 공통 원리는 혼에 잠재되어 있는 힘이 자유로이 발휘될 수 있도록 온갖 수단을 다해 육체의 속박으로부터 풀려고 하는 것이다. 그 가르침과 방법 중 어떤 것은 육체의 장애물을 벗으려고 하는 것이고, 어떤 것은 육체와혼을 연합하게 하려고 하는 것이며, 어떤 것은 수양과 연단을 통해 혼을 강화함으로써 육체를 극복하게 하려는 것들이다. 그 방법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 배후에 있는 원리는 다 혼에 잠재해 있는 신기한 힘을 밖으로 드러나게 하여 그것으로 목적을 달성하려는 것이다.

사람들이 어떤 방법과 과정을 거쳐 육체에 감금되어 있는 혼의 잠재력을 풀어내어 소위 도사나 구루, 술사, 부처 등과 같은 초월적 능력 소유자의 경지에 이르게 되는지 나는 알 수 없다. 아마도 그들은 다 마귀에 의해 그 힘을 풀어 사용하도록 격려되고 방법도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이런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 자신은 자신들이 마귀에 의해 그런 일을 깨닫거나 마귀의 도움으로 그런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단지 그것이 신이 주신 힘이라고 믿거나 진리나 믿음의 힘이라고 믿을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그런 힘이 인간이 본래 가지고 있는 자연적인 힘인데 일반 사람들이 욕심이나 수련 부족으로 미처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자신들은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 그들은 자신들이 사용하고 있는 능력이 혼의 힘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런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 않더라도 그들이 하는 모든 일은 다 혼의 힘을 풀어 사용하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불교나 힌두교, 도교나 심지어 기독교의 어떤 종파에서는 병 고치는 일과 장래 일을 예언하기도 한다. 그들은 이런 이적을 수행하기 위해서 특수한 초자연적 능력을 사용한다. 그 힘의 정체가 바로 혼의 잠재된 능력인 것이다. 도교나 요즘 널리 퍼져 있는 각종 신흥 종교에서 사용되고 있는 고행이나 호흡법 또는 단순한 추상적 명상에 이르기까지 모든 방법들은 다 혼의 힘을 풀어 놓기 위해 육체를 혼에 복종시키려는 하나의 원리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는 방법들이다.

오늘날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 살펴보면 우리 주위에서는 미신이라고 간단히 처리해 버릴 수 없는 많은 기적적인 현상들이 벌어지고 있다. 불교는 본래 무신론적이었다. 석가는 무신론자였다. 그런데 불교에서도 여러 기적적인 일들이 종종 일어난다. 그렇다면 그런 일들 즉 불교의 고승들에 의해 일어나고 있는 여러 기적적인 현상들은 분명히 그 신이 준 것은 아닌 것이다. 그것들은 그들의 신앙 원리에 의해서 보더라도 신이 아니라 분명히 사람 안에서 나온 것이다. 불교나 도교, 동양의 어떤 신비 종교의 뛰어난 고승들은 모든 육신적 욕망을 제거하고 무욕의 경지에 이르기도 하며 알려지지 않은 과거의 일을 알아 맞추며 심지어 부분적으로는 장래 일도 알아낸다. 장풍을 낸다든지 축지법을 사용하여 먼 거리를 단숨에 달려간다든지 하늘을 난다든지 하는 옛날 중국 무협지에 나오는 허풍스런 이야기들은 대개 과장된 것이기는 하나 전적으로 지어낸 이야기는 아니며 그 뿌리는 어디까지나 위에서 말한 혼의 잠재력을 풀어내어 사용한 사람들의 경험에 두고 있는 것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見性之境에 들어가면 장래 일을 예언할 수 있다고 한다. 이 여러 가지 절제와 금욕은 하나의 통제 원리에서 나온다. 불교도들은 혼의 힘을 모으기 위해 모든 육체적이며 물질적인 속박을 풀어내기 위해 큰 힘을 쏟는다. 명상에 의한 정신력 집중과 고행 등 온갖 방법을 다 사용하여 기어이 혼을 강화시키고 그로 말미암아 혼에 잠재되어 있는 힘을 풀어내려는 것이다.

이런 단체에서 수행과 수련을 하는 사람들은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깊은 경지가 있으며 그때마다 깨닫는 빛의 정도가 다르다고 한다. 아주 깊은 곳에는 깊은 진리가 있으며 놀라운 자유와 능력을 얻게 된다고 한다. 이것은 사실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그것을 어떻게 느끼고 어떻게 믿든지 간에 다 사실 아담이 타락하기 전에 가졌던 힘을 혼의 능력을 조절하는 가운데서 조금씩 풀어 자유롭게 사용하는 경험을 하고 있는 중에 있는 것이다.  

세상에는 아주 보잘것없는 이론과 주장을 가지고 사람을 미혹하는 종파들이 많이 있다. 그들의 신앙은 미신에 가깝게 느껴진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거기에도 따르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본다. 왜 그런지 아는가? 사람들이 어리석고 미욱하기 때문인가? 그것만은 아니다. 그런 종파에 사람들이 따르는 것은 거기에 어떤 능력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약 100년전에 기독교 안에 크리스찬 사이언스라는 종파가 생겨났다. 이들은 질병과 죄와 죽음의 존재를 부정했다. Merry Baker Eddy라고 하는 여자가 그 종파를 창시했는데 그는 병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의 생각 속에 있는 것일뿐 실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므로 아픔이 있을 때는 믿음으로 그것을 부인하기만 하면 그 고통과 증상이 사라진다고 가르쳤다. 이 얼마나 황당하고 터무니 없는 가르침인가? 실제로 그 후 많은 사람들이 그 집단의 터무니 없음에 대해 비난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사람들은 그들을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그것은 그들 안에서 많은 병 고침이 일어났으며 그것이 모두 에디의 가르침대로 병을 부정하는 중에 되어졌음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사탄은 이런 종파를 통해 사람이 그의 죄나 병을 부정하기만 하면 그리스도를 믿을 필요도 없이 그것들을 물리칠 수 있다는 느낌을 사람들에게 심어주려고 한 것이다. 이것은 어느 정도 주효했다. 사탄은 이런 일을 함에 있어서 무슨 방법을 사용했는가? 바로 무서운 혼의 잠재력을 사용케 하여 육체의 연약과 속박을 풀도록 한 것이다.    

오늘날에도 이것과 유사한 일들이 성령 운동을 한다는 사람들에 의해 많이 행해지고 있다. 실제로 하나님에 의해 일어나는 일도 있지만 많은 일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사람의 수련과 수양에 의해 내재된 힘을 푸는 과정을 거쳐 일어난 것들이다. 또 증산도, 대순진리회, 천리교, 남묘호랑개교, 기공 훈련을 하는 각종 집단 등 우리 주위에 발호하고 있는 수많은 신흥 종교들이 모두 엉성하고 터무니 없는 교리를 가지고 있지만 혼적 능력을 사용하여 사람들을 놀라게 함으로써 사람들을 미혹할 수 있는 것이다.

사탄은 사람으로 하여금 혼의 능력을 사용하여 병을 고치거나 뜨거운 불에 들어가거나 작두 위에 올라서도 발을 다치지 않거나 손을 안대고 물건을 움직이거나 변형시키거나 혼자서 기차를 끄는 등의 초월적 육체의 능력을 경험하게 한다. 그러나 이것뿐만 아니다. 사탄은 사람의 육체적 능력을 제고(提高)시킬 뿐 아니라 정신력 또한 그렇게 제고시킨다. 혼의 잠재된 능력을 끌어내어 사람의 정신력을 극도로 강화시키면 앞에서 말한 것처럼 사람이 과거와 미래의 일을 볼 수 있으며 심지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어낼 수 있기도 한다. 가장 낮은 형태의 이런 정신력 사용은 최면술이다. 1778년에 안톤 프란쯔 메즈머라는 사람에 의해 오늘날 최면술이라고 일컬어지는 방법이 발견되었다. 그러다가 1784년에는 메즈머의 제자는 그것에 기초하여 '투시'를 행하기 시작했고 얼마 후 그것은 '독심술(讀心術)로 이어졌다. 심령감응술은 사람이 감각기관을 통하지 않고 마음과 마음이 바로 교통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남의 말을 듣지 않고서도 남의 마음을 알아내는 기술이다.

근대에 들어와서 이런 기적적인 현상들이 크게 증가되었기 때문에 최면술을 비롯한 많은 심령술이 마치 하나의 과학처럼 되었다. 오늘날 이 분야에 능한 사람들에게 있어서 소위 기적이라고 불리는 여러 초월적인 현상들은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는 자연스러운 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일들이 우리에게 있어서는 더 자연스러운 일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런 일들이 기적도 아니며 과학으로 다루어질 자연 현상도 아니며 오직 사람이 사탄의 도움으로 그 잠재된 혼적 능력을 풀어놓음으로 생겨난 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체험을 한 사람들이나 위에서 말한 종교, 종파들에서는 사람 속에 굉장한 힘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말하기를 사람은 믿음과 수양으로 거의 무엇이나 할 수 있다고 한다. 정신력으로 몸의 병도 고치고 고통도 사라지게 할 수 있고 열락을 맛볼 수 있으며 우주의 모든 에너지를 다 끌어서 무한대로 강해질 수 있다고 한다. 이들은 가르치기를 '모든 인간은 본래 다 신의 성질을 가지고 있는데 다만 그 신이 육체 안에 갇혀 있으므로 이것에서 신을 풀어놓기만 하면 사람은 신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얼마나 사탄의 말과 같은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호흡법이나 명상과 고행, 금욕을 통해 최면술, 투시, 예언, 유체이탈, 신유 등의 현상은 다 혼의 힘을 풀어서 쓰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도 많은 점장이들이 있는데 그 중에 몇 명은 매우 용한 점장이들이다. 그들이 그렇게 정확하게 점을 칠 수 있는 것은 다 사탄의 도움을 받기 때문이다. 사탄이 사람들에게 역사하여 능력을 나타내게 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보통 신내렸다고 하는 것으로써 사탄이 사람에게 강권적으로 역사하여 그들 내면에 있는 혼의 힘을 사용하지 않고서도 악령의 지시를 따라 무엇인가를 말하게 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사람의 혼적 능력을 강화시켜서 그것을 통해 예언의 능력을 키우게 하는 것이다. 불교의 고승들이나 유명한 점장이 중 어떤 사람들은 결코 갑자기 귀신이 내릴 때만 예언하지 않는다. 그들은 수행과 노력으로 자신의 기술을 향상시키기 위해 애를 쓴다. 이런 사람들은 자주 자신의 능력을 나타내지 않지만 한 번씩 예언을 하면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예언을 하는 것이다. 이런 일은 결코 속임수나 우연이 아니며 분명히 초자연적인 것이다. 이런 현상들은 사람이 우연히 또는 악령의 사주에 의해 또는 간절히 그것을 열망하다가 혼의 잠재력을 풀어놓을 수 있는 어떤 방법에 접해서 일어나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사람 속에 이런 힘이 들어있는 줄 모른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이런 힘이 자기 속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또 그것을 꺼내어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누구도 어떻게 그런 힘이 사람 속에 들어 있게 되었으며 또 어떻게 그것이 밖으로 나오게 되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가진 우리는 그 힘이 본래 아담이 지음 받을 때부터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아 가지고 있던 힘인데 타락 후 하나님에 의해 육체 안에 갇혀 있게 된 혼의 힘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 능력은 사람의 타락과 함께 더 이상 쓰일 수 없게 제한되었다. 하나님이 제한하신 것은 쓰지 않아야 한다. 그것이 쓰인다면 사람은 하나님께 이중으로 반역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사탄은 바로 이 점 때문에 사람을 부추겨 이것을 사용하게 하려고 기를 쓰는 것이다. 이 숨은 힘을 개발하여 사람으로하여금 하나님 없이도 행복할 수 있고 무엇이든지 마음 먹은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케 하려는 것이다. 사탄은 사람이 자기의 약속과 같이 하나님을 떠나서도 살 수 있을 뿐 아니라 하나님과 같이 되어 하나님처럼 풍부하게 살 수 있다고 느끼게 하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사람은 자신을 스스로 경배하게 될 것이고 인간에 대한 이런 경배는 간접적으로 사탄에 대해 경배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직접적인 능력의 역사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간구된 기도의 응답으로 이루어진 역사를 제외한 모든 초자연적인 현상들은 다 그 배후에 사탄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사탄은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혼의 잠재력을 이용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러므로 인간의 능력을 극한으로 배양하기 위해 애를 쓰는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다 사탄과 관계하고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나는 진리를 알고 난 이후로부터 수양이나 수련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것은 다 사람의 계발과 확장을 위해 사람을 훈련하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수양과 수련과 훈련을 거쳐 극기하고 능한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죽어 없어져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주신 새 생명으로 거듭나야 하며 그 생명으로 살아야 한다. 그 생명의 능력을 누리는 가운데 육체의 능력을 넘어서는 초월적인 능력을 경험해야 하는 것이지 육체 안에 갇혀 있는 혼의 힘을 사용함으로써 인간 자신의 능력을 강화해서는 안된다. 그래서 나는 여름 집회 등의 모임도 수련회라고 부르지 말고 단지 말씀 집회라고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다.

또한 나는 명상도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명상은 자기를 흔들림 없는 고요한 위치에 둠으로써 육체와 정신의 힘을 모으는 것이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진리에 대해 우리의 생각을 집중하기 위해 조용한 시간을 가지며 마음을 가다듬는 것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말씀과 성령으로 인도받지 못하는 명상, 곧 소위 무아의 경지로 들어가서 모든 생각을 내려 놓고 마음을 비우는 식의 명상은 사탄의 공격을 불러 오기가 쉽다. 무아의 지경에서는 의지와 자제력을 상실하고 사탄의 외부적인 가르침에 쉽게 빠져들 수 있다. 이렇게 될 때 본의 아니게 사탄으로 말미암는 신비적 경험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에게서 혼의 강력한 능력이 나타나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생각이 여러 가지 잡된 것들로 복잡하게 흩어져 있고 감정과 의지가 약하므로 인해 혼이 육체를 완전히 굴복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혼의 잠재력이 나타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고요한 가운데서 정신을 집중시켜 육체의 장벽을 깨트려야 한다. 이것을 위해 고도의 명상과 수행, 호흡법 등이 사용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분명한 인도와 말씀이 뒷 받침 되지 못하는 장 시간의 산 기도나 금식은 피해야 한다. 그것은 고행 중에 명상하는 것이나 다름 없기 때문이다.

근래 우리는 유리겔러 같은 심령술사나 데이빗 코퍼필드 같은 마술사들이 TV에 나와서 공개적으로 혼의 초월적인 능력을 사용하여 사람들을 미혹하는 것을 본 바 있다. 이것은 다 적그리스도적인 현상이며 이를 통해 사탄이 의도하는 것은 단 한 가지이다. 그것은 바로 사람의 마음이 그리스도에게서 멀어지게 하려는 것이다. 인간의 내재된 가능성을 부각시킴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 격려하고 구원의 희망을 가지게 하거나 정신을 헛된 호기심에 파는 동안 그리스도에게로 다가가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UFO 이야기, 4차원의 세계, 귀신이나 유령 이야기, 마술과 초능력들, 예언, 미스테리 등과 같이 TV나 신문 잡지에 소개되는 불가사의한 사건들은 대개 사실이다. 이와 같은 종교적이며 과학적인 기적 현상들은 다 사탄이 직접 조작하거나 사람들을 사주하여 혼의 힘을 풀어 쓰게 함으로써 나타난 현상들이다. 그들과 우리 사이의 차이점은 한 가지 뿐이다. 우리는 성령님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는데 비해 그들은 사탄을 통해 인간의 혼적 능력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감추어진 혼적 능력을 꺼내어 사용하기를 원치 않으신다. 그것이 필요하다면 하나님은 처음부터 그것을 허락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비록 연약하게 되더라도 그것을 쓰지 못하게 하신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사용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가 거듭난 것은 자신의 혼적 능력을 계발함으로써가 아니라 영으로써 거듭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혼적 능력은 나타나서는 안된다. 오직 영으로 믿음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해야 한다. 주님은 우리의 혼적 생명은 오히려 죽고 힘을 잃어야 한다고 여러 번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요12:24,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16:25) 그러므로 우리는 고의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간에 혼의 잠재력을 야기시키려는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주님이 재림하시기 전에 사탄은 이 혼의 힘을 개발하여 영계를 혼란시키고 하나님의 자녀들을 속이는 일을 더 극렬하게 전개하려고 할 것이다. 실제로 오늘날 이런 일은 크게 증가하고 있다. 지금은 대량 배교의 시대라 할만하다. 잠시동안 사탄은 이 세대의 신으로 군림하며 어리석은 자들 위에서 왕 노릇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안된다.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