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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하와의 창조 (2) / 창2:18-25

2010.05.03 14:58

이상봉 조회 수:3666

우리는 지난 시간에 하와의 창조에 대해 조금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은 사람이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서 하나님과 연합하며 하나님과 사랑 안에서 함께 복된 삶을 누리는 것이다. 이를 위해 또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를 분명하게 인식하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은 사람을 흙으로 지으신 후 거기에 생기를 불어넣으심으로써 영이 되게 하셨다. 또한 동산 중앙에 생명나무를 두셔서 그것을 먹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생명을 계속적으로 누릴 수 있도록 하셨다. 그리고 아담에게서 하와라는 배필을 만드시고 그와 다시 결혼하게 하셨다. 이런 일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사람과 연합하여 살기를 원하신다는 사실과 또한 사람과 사람이 서로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살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하려 하신 것이다.


- 연합(결혼)으로 몸의 생명을 누려야 함 -

그리스도인은 자기 속에서 역사하시는 주님의 생명을 개인적으로 누려야 할 뿐 아니라 '몸의 생명'을 또한 누려야 한다. 이는 곧 교회 형제들 속에서 역사하시는 그리스도의 생명을 누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려면 개인주의는 분쇄되어야 하며 힘을 다해 형제들과 교제를 유지하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자기 개인 뿐 아니라 몸의 모든 지체들 안에서 역사하시는 그리스도의 생명을 풍성하고 온전하게 경험하도록 해야 한다.

몸의 생명이 풍성하게 누려지려면, 각 지체의 생명이 서로 연결되어 완전한 몸의 생명으로 누려지려면 무엇보다 형제 각 사람이 자기를 낮추어야 한다. 겸손으로 허리를 동여야 한다. 참되고 생명이 풍성한 교회가 되기 위해서 우리는 한편으로 그리스도를 증가시키고 한편으로 자아를 감소시켜 나아는 일을 계속해야 한다. 천국을 누리려면 우리 안에서 역사하는 하늘(하나님)의 생명을 살려내고 땅(자아)에 속한 생명을 거절하고 부인하는 일을 끊임없이 힘써야 한다.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정하신 이 길을 따라 얼마든지 생명 안에서 연합과 사랑의 복된 삶을 누리게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엡4:1-16)

이 말씀에서도 천국을 누리기 위해 해야 할 일로 첫째 나오는 것이 믿음으로 자기를 낮추라는 것이다. 사랑에는 겸손과 오래 참음과 기대와 소망과 희생이 필수적이다.

주님은 세상에 계실 때 아버지의 뜻을 이루고 하나님의 생명으로 충만하기 위해서 항상 자기를 낮추셨다. 주님은 어떻게 자기를 낮추셨는가? 오직 성령께 복종하심으로 그렇게 하셨다. 그는 전적으로 성령님의 능력을 힘입어 일하셨다. 바울도 마찬가지였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을 자기의 머리가 되시도록 항상 허용하셨다면 그리스도에게서 나온 교회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된다. 교회가 꼭 그리스도가 하셨던 것처럼 행한다면 하나님의 목적은 달성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닮은 아들들을 얻기 원하셨기 때문이며 또 그리스도에게 붙여 줄 수 있는 배필로 교회를 지으셨기 때문이다.


- 하와는 아담의 잠에서 만들어졌다 -

창2:21-23을 보면 하나님은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신 후' 아담의 몸에서 갈비뼈를 취하여 하와를 만들었다고 되어 있다. 이 사실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교회를 만드실 때 단지 사람들을 세상으로부터 이끌어 내셔서 교회가 되게 하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하여 그의 생명을 받도록 하심으로써 교회가 되게 하셨음을 볼 수 있다. 아담이 깊이 잠들었다는 것은 사실상 죽음의 상태와 같은 것이다.

이 죽음은 창세기 3장에 나오는 죄로 인한 죽음과는 다르다. 이것은 하와를 생산하기 위한 죽음이다. 그리스도의 죽음도 이와 같다. 즉 주님의 죽으심에는 구속과는 상관없는 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한편으로 사람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자신을 속죄 제물로 드린 데서 나온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죄와는 상관없이 그의 몸이요 장차 그와 연합할 신부인 교회를 생산하기 위해 자신을 번제와 같이 드린 데서 나온 것이기도 하다.

사실 대속이라는 것도 이 새 창조를 위한 수순에 불과하다. 첫 창조 때 그리스도를 대표하는 아담은 교회를 대표하는 하와를 낳기 위해 하나님에 의해 깊이 잠들게 된 후(죽음을 당한 후) 그의 갈빗대(살과 피)가 꺼내어졌다. 그리스도의 구속도 이와 같은 또 하나의 창조 행위이다. 그리스도께서 죄로 인해 멸망당할 자들을 십자가의 죽음으로 대속하시고 다시 살리신 것은 하나님께서 처음 흙으로 사람을 지으신 것이나 하와가 아담의 죽음 상태에서 살과 뼈가 취하여져 만들어진 것이나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죄는 치우면(처리하면) 될 문제이지 궁극적인 문제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택하셨으며 사랑하시며 연합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죽으신 것이다. 이는 해산으로 아이를 낳는 것과 같다.
하나님은 자녀들을 부모의 희생 속에서 나게 하시고 자라게 하신다. 우리는 왜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번성케 하실 때 그냥 새로이 사람들을 계속 창조하시지 않고 이미 지음받은 사람(부모)으로부터 생명을 이어받아 태어나게 하시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사람은 또 부모의 생명을 받을 뿐 아니라 그의 수고와 희생을 바탕으로 (사랑과 보살핌으로) 자라게 된다. 이것은 모두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사람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시고 그렇게 대하시는 것처럼) 서로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며 연합하여 함께 살도록 하게 하기 위함이다.      


- 죄와 상관없이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는 교회 -

앞에서도 말했지만 교회는 원래 죄와 상관 없이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는 거룩한 것이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엡5:25)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볼 수 있다.

{첫째}, 그리스도는 우리가 교회이기 때문에 자기를 주셨다는 것이다. 이것은 롬5장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에 주님께서 죽으셨다는 것과는 다른 차원에서의 언급이다. 이 말씀은 오직 우리가 교회 즉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들이기 때문에 자신을 주셨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둘째}, 그리스도는 다른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다만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자기를 주셨다는 것이다.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에 자기를 주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자기를 주셨다는 것이다. 죄인이라서 죽었다면 모든 죄인들이 다 교회가 되었어야 할 것이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신부로 삼기 위해 죽으셨다.

우리는 구속(죄) 문제가 중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모든 것은 아니며 하나님의 영원하신 계획 안에 있는 교회와 궁극적으로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므로 거룩한 것이다. 교회의 생명은 죄인의 생명이 아니며 죄와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다. 교회는 적어도 그 생명의 본질로 말할 것 같으면 범죄하지도 않으며 타락하지 않는다. 적어도 하와 안에서 나타난 교회는 죄와 상관이 없고 오직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아서 그의 영광과 승리를 나타내는 것이다.

하와 안에서 나타난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주기까지 사랑한 대상이요 그와 한 생명이며 그와 연합하여 같이 살 그의 배필이다. 성경에는 교회를 상징하는 여러 여자들이 등장하여 교회의 갖가지 모습을 상징하고 있다. 예컨대 창세기에 나오는 {리브가}와 이삭의 결혼은 교회가 어떻게 그리스도에게 드려지는가를 상징하고 있으며, {아스낫}이 요셉과 결혼한 일과 그가 애굽에서 얻은 아들들이 야곱에게 속한 것은 교회가 어떻게 세상에서 선택받아서 어떻게 하나님께 속하게 되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또 출애굽기에 나오는 {십보라}는 광야에서 모세와 결혼함으로써 광야 교회를 상징하고 있으며, 여호수아서에서 갈렙의 딸 {악사}가 옷니엘에게 출가한 후에 아버지로부터 윗 샘과 아랫 샘을 얻은 것은 유업을 받는 교회에 대해 보여준다. 또 룻기에 나오는 {룻}이 보아스에 의해 대가를 치르고 결혼한 것은 값으로 사서 구속되는 교회를 보여주는 것이다. 또 사무엘상에 나오는 {아비가일}과 다윗의 결혼은 군대로서 싸우는 교회를 보여준다.

이 모든 여자들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교회는 세상에서 선택받아, 구속을 입었고, 광야를 거쳐 나왔으며, 사탄과 싸우며, 유업을 받고, 그리스도께 바쳐진 바 되었다. 그러나 그 모든 모형들 가운데서 하와를 통해 묘사되고 있는 교회의 모습이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과 관련된 가장 근본적인 교회의 모습이다. 우리는 반드시 하와 안에서 나타난 교회 곧 타락하기 전 죄와 상관이 없는 교회의 모습을 보아야 한다. 전적으로 그리스도로부터 나와서 그리스도로 살고 그리스도를 위해 존재하는 교회 이것이 바로 하와 안에서 보여진 참된 교회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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