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llde1
slide2
slide3
slide4
창세기

사람의 타락 (3) / 창3:7-19

2010.05.03 15:00

이상봉 조회 수:3637

타락의 결과 (계속)

8.사망을 가져옴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창3:19)
"그가 구백삼십 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창5:5)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롬5:12,14)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고전15:22)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사탄의 말을 들음으로 죄가 들어왔고 죄는 사람 자신과 세상에게서 진리와 생명을 몰아내고 거짓과 사망을 가져왔다. 타락 직후 사람에게 즉시 생긴 변화는 사람의 눈이 밝아졌다는 것이다. 타락 직후 아담과 하와는 자기들의 벗은 몸을 발견하고 부끄러워하며 옷으로 그것을 가렸다.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가라사대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고하였느냐?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 (창3:7-11)

타락하자마자 사람의 눈이 밝아져서 자기들이 벗었다는 것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는 여기서 다음 두 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첫째, 사람이 하나님의 생명을 거부하고 선악과를 먹은 뒤부터는 모든 것을 하나님의 생명에 따라 판단하지 않고 눈으로 보고 머리로 생각한 것에 따라 판단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둘째, 눈이 밝아져서 사물을 선악에 따라 판단하게 되었을 때 제일 먼저 보인 것은 타락한 인간의 수치스런 모습이라는 사실이다. 사탄은 사람이 선악과를 먹음으로써 눈이 밝아지면 하나님처럼 될 것이라고 했지만 실제로 눈이 밝아졌을 때 나타난 것은 타락한 죄인뿐이었다.    

이처럼 눈이 밝아졌다는 것은 발전이 아니라 퇴보이며 자유와 행복의 시작이 아니라 죄에의 속박과 불행의 시작이었다. 눈이 밝아진다는 것은 즉 지식과 지혜를 가지게 된다는 일 자체는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아니다. 문제는 그 지식과 지혜가 무엇으로 말미암았느냐 즉 눈이 밝아지게 된 근원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지식과 지혜가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이라면 그러한 지식과 지혜는 많을수록 좋을 것이다. 바울은 성도들을 위해 기도할 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고 했다.(엡1:17-19) 문제는 이 지식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사람 자신으로부터, 즉 사탄으로부터 온 것일 때 생기는 것이다. 이런 지식은 사람을 생명이 아니라 죽음으로 몰아가게 된다.

사람은 하나의 그릇과 같다. 하나님과 그의 진리를 담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그릇이 되고 사탄과 그의 거짓말을 담으면 썩어짐과 사망을 나타내는 그릇이 된다. 사람이 사탄의 말을 듣고 선악과를 먹음으로써 눈이 밝아진 것, 그래서 이전보다 많은 지식과 지혜를 가지게 되었다 할지라도 그것은 결코 더 영광스럽고 더 좋게 된 것이 아니라 꺾인 꽃과 같이 비참하고 망하게 된 것이다.  

"가라사대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고하였느냐?" 누가 아담과 하와에게 그들의 벗었음을 가르쳐 주었는가? 여기서 벗었음을 깨달았다는 것은 곧 벗음이 부끄러운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벗었음을 가르쳐 주었다는 말은 벗은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는 말이다. 본래 사람은 벗은 것이 수치스럽지 않았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창2:24,25) 사람이 벗었다는 것은 육체가 하나님이 지으신 그대로 드러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인데 이것은 조금도 이상하거나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적어도 육체가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을 유지하고 있는 동안은 그렇다는 것이다.

몸이 영보다 저급하거나 못하다는 생각은 하나님의 생각이 아니다. 그것은 사탄이 심은 거짓된 생각이다. 헬라 사상에 영지주의라는 사상이 있었는데 거기서는 육체는 하나님의 창조물이 아니라 죄의 산물이기 때문에 부끄럽고 악한 것으로 여겨졌다. 오직 영만이 거룩하고 선한 것이며 육체는 열등하고 더러운 것이므로 구원받아야 할 대상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세상의 거짓된 철학일 뿐 하나님의 정하신 바와는 전혀 맞지 않은 생각이다. 육체는 본래 영과 혼을 담고 그 뜻을 실현하는 영광스런 도구이다. 이것은 거룩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벗은 채로 있어도 하나도 이상하거나 수치스럽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타락한 이후 벗은 몸은 수치스런 것이 되고 말았다. 그것은 육체가 본래 열등하고 악한 것이라는 사탄의 거짓말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도 사람이 범죄함으로 인해 실제로 하나님 앞에서 수치스런 존재가 되었기 때문이다. 타락으로 인해 이제 몸은 죄의 몸, 사망의 몸이 되고 말았다. 꼭 몸이 부끄럽게 된 것이라기 보다 인간 자체가 부끄럽고 수치스런 존재가 되었기 때문에 벗은 몸은 수치스럽게 된 것이다. 사람은 이제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서로에게도 자신을 떳떳이 드러내 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 이제 사람은 빛을 싫어하며 서로를 부끄럽게 여기는 상태가 되었다.


눈이 밝아진다는 것과 그런 연후에 사람이 수치 가운데 숨었다는 것에 대해 좀 더 생각해 보자.

눈이 밝아진다는 것, 즉 사람이 스스로 무엇이든지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타락한 죄인에게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오늘 우리에게 투시의 은사가 있다면 그것은 기분 좋은 일이 될 것인가? 여러분은 우리가 다른 사람의 속마음을 속속들이 다 읽을 수 있다면 그것이 매우 기분 좋을 것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물론 사람들이 다 아름답고 좋은 생각만 품고 있다면 그런 생각을 엿보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사람들의 마음은 어떤가? 미움, 다툼, 시기, 질투, 이기심과 온갖 추악하고 거짓된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사탄에게 속아서 생명의 길에서 떠나 서로 물고 먹고 하며 모두가 죽을 길로 행하고 있다. 우리의 눈이 열려서 이 모든 것을 다 보고 판단할 수 있게 된다면 그것은 정말로 끔찍한 일이 될 것이다.  

아담과 하와가 눈이 밝아진 후 처음으로 한 일은 서로를 부끄럽게 여기고 숨는 것이었다. 눈이 밝아지면 하나님과 같이 될 줄로 생각했지만 하나님과 같이 된 것이 아니라 한 몸으로 지음받은 그들이 둘로 갈라지는 결과가 초래되었다. 아담과 하와는 부부임으로 한 몸이었다. 그러나 타락 후 그들은 서로를 부끄럽게 생각하고 감추고 가렸다. 그들은 하나에서 둘로 분리된 것이다. 선악과를 먹은 것은 무엇인가를 보태기 위한 것이었지만 결과는 보탠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을 쪼개고 잃어버리는 것이었다.  

사람은 그를 지으신 하나님을 떠나서는 안된다. 아버지를 떠난 아들에게는 아무 좋은 일도 없다. 지식이든 물질이든 하나님이 궁극적 근원이다.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약1:17)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롬11:36) 사람이 생명과를 먹지 않고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먹었다는 것은 얼마나 원통한 일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 있어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선악과를 먹고 눈이 밝아져서 더 똑똑하고 더 지혜롭게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정함 없고 이룰 수 없는 목적을 세우며 또한 그것을 무리하고 어리석은 방법으로 성취하려고 발버둥치고 있는 것이다. 더 많은 정보, 더 많은 지식, 더 지혜롭고 유능하게 되기를 얼마나 간절히 원하고 있는가!

오고 오는 세대를 통해서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서 하나님의 아들로 살면서 하나님의 무궁한 지혜와 지식과 능력을 누리기를 거부하고 스스로 무엇인가를 해 보려고 발버둥칠 것인가? 오늘날에 있어서 더 안타까운 일은 교회 안에 있는 신자들조차도 성령님의 인도에 복종함으로써 하나님의 판단과 지혜를 누리는 일에 매우 소극적이라는 것이다. 성경공부나 설교를 듣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상식을 버리고 말씀에 복종해야 한다. 생각을 버리고 영의 인도에 복종해야 한다.

하늘로부터 오는 참 지혜가 아닌 모든 세상 지혜와 지식은 사람을 사탄의 거짓말 속에 묶어서 진리로 나아가지 못하게 방해한다. 그것은 결코 사람을 자유롭게 하지 못한다. 이치대로라면 머리가 좋고 영리한 사람일수록 하나님을 더 잘 믿고 진리를 더 잘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반대이다. 생각이 많고 지식이 많은 사람일수록 진리를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것은 그의 생각이 그것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거짓된 지식이 많은 사람은 올바른 판단을 하기 어려운 것이다. 오직 자기 생각과 계획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는 사람만이 진리를 알며 자유케 된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1,32) 자유는 생명으로 말미암으며 진리로 말미암는 것이다. 그것은 결코 머리의 생각으로, 지식으로 말미암는 것이 아니다.
  

"아담이 가로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가로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창3:8-13)

이 말씀은 우리에게 눈이 밝아져 지식을 얻은 사람이 하나님처럼 영광스럽고 거룩하게 된 것이 아니라 사탄처럼 거짓되고 진실하지 못하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아담은 자기의 죄를 하와에게로 떠넘겼고 하와는 그것을 뱀에게로 또 떠넘겼다. 더욱이 아담은 자기를 범죄케 한 하와를 가리켜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하게 하신 여자"라고 말함으로써 마치 범죄의 책임이 하나님께도 있는 것처럼 말했다. 또 여자는 자기가 뱀의 말을 받아들여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것에 대한 책임을 유혹자인 뱀에게 넘겼다. 이것은 모두 사탄의 말을 들은 사람의 생각이 얼마나 거짓되고 허망하게 되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