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과 하와는 처음으로 타락한 자들이었지만 하나님의 구원의 길에 대해 듣고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처음을 구원을 얻은 사람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들이 낳은 두 자녀 가인과 아벨은 똑같이 부모의 길을 따르지 않았다. 지난 주에 살펴본 대로 아벨은 부모로부터 들은 복음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그 복음을 중심으로 살고 행동한 사람이었다. 그는 양과 기름으로 제사를 드림으로써 하나님의 방법에 따라 하나님께 나아갔다.
그러나 가인은 달랐다. 그는 부모와 동생이 걸어간 복음 안에서의 구원의 길을 걷지 않고 계속하여 타락의 길을 걸어갔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사탄의 말을 들음으로써 사탄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이제 사람은 범사에 사탄의 조종을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것을 이기는 유일한 길은 복음을 믿는 것이다. 그러나 가인은 부모로부터 전해 들은 복음을 거절하고 자기 생각이 이끄는대로 살려고 했다. 이러한 가인의 상태는 중립적인 것이 아니고 사탄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람은 가만히 있으면 사탄에게 이미 사로잡혀 있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스스로 모든 것을 결정하고 선한 것을 도모하여 모든 일을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 생각일 뿐 실은 사탄의 조종을 받아서 거짓과 살인의 길을 걸은 것이다.
이럴 때 이기는 자가 되려면 사탄을 대적해야 한다. 상식과 교양으로 포장하여 슬그머니 사람 속으로 들어오는 사탄의 거짓말을 단호히 대적해야 한다. 우리는 아담의 후손이다. 그러므로 타락자의 자손들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믿음으로 복음을 받아들여서 구원을 받은 자의 자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타락과 무능과 실패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한 번 타락한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계속 타락을 이어가느냐 아니면 그것을 거절하고 구원을 누리느냐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라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사탄은 가인이 복음을 영접하면 자신이 가인(사람)을 계속 지배할 수 없음을 알았기 때문에 간교하게 가인에게 공작을 폈다. 사탄은 가인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섬기기는 섬기되 자기의 방법으로 섬기도록 역사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구원의 길을 보이셨지만 가인은 그것을 주목하지 않고 자기 길을 따랐다. 이것은 곧 하나님의 구원의 길을 거절한 것이다.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 이것이 바로 종교이다. 종교는 사람이 하나님을 자기 생각대로 섬기는 것이다. 종교는 사람의 관념이 만들어낸 산물이다. 땅은 타락한 사람의 터전으로서 사람과 함께 저주를 받아서 하나님께는 열납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그것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장차 회복되어야 할 것이었다. 그러나 가인은 그것을 괘념치 않고 자기 형편과 생각을 따라 땅의 소산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
하나님이 아담을 통해 계시한 것은 사람이 하나님께 나아갈 때 육신에 속한 어떤 것, 땅에 속한 어떤 것으로 나아가지 말고 오직 그의 義의 요구를 만족케 할 수 있는 피 있는 제물을 가지고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담이 타락한 직후 아담 자신이 스스로 취한 무화과나무 잎 옷을 벗기고 희생 제물의 가죽으로 만든 옷을 해 입히신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이 스스로 만든 옷에 만족하시지 않았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사람의 죄와 수치를 가리는데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담과 하와는 이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분명히 그 자녀들에게 하나님 앞에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전달했을 것이다.
아벨은 그러한 부모의 말에 유의하여 행동했다. 그러나 가인은 자신이 더 현명하다고 생각하여 하나님의 길(계시)을 거절했다. 그는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않았고 자신의 방법 곧 자신의 관념에 따라 종교를 발명했다. 누가 그에게 그 땅의 소산을 드리라고 했는가? 오직 사탄에게 충동되어 가인 자신이 스스로 그렇게 한 것이다.
역대로 하나님의 계시를 따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거절하고 자신의 종교를 발명한 사람들이 있어왔다. 그들은 다 가인의 후예들이다. 그들은 다 선한 말을 하고 좋은 일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죄를 짓지 말고 선을 행하며 하나님을 섬기라고 가르쳐왔다. 그러니 그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들은 말한다. "하나님을 이런 식으로 섬기든 저런 식으로 섬기든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데 무엇이 문제인가? 우리가 도둑질이나 악행을 했는가?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당신들은 자신들의 관념에 따라 하나님을 섬길 뿐 하나님의 방법을 따르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당신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우상을 섬기는 것이며 자기 자신을 섬기고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창4장의 가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하나님은 우리가 보기에 그다지 큰 문제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일로 인해 왜 그렇게 가인을 심하게 대하셨으며 가인을 배척하셨는가 하는 의문을 가진다. 그러나 그것은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 하는 근본적인 문제이다. 하나님을 믿으면 사람이 자기의 실상에 대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어야 한다. 사람은 죄인이며 그 죄의 길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구원자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것을 아는 사람은 자기 마음대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져서는 안 되며 제사 또한 마음대로 드려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 사람을 구원하시며 이를 나타내기 위해 흠없는 어린 양을 잡아서 피를 흘리도록 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반드시 그 방법을 따라야 한다.
오늘날 사람들은 자신의 필요와 관념 속에서 하나님을 경배하는 많은 새 길을 발명했다. 그러나 사람이 그 본성을 따라 고안해 낸 모든 것은 다 사실상 마귀의 발명품임을 알아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단지 하나님을 위해 일하기만 하면, 그분을 섬기기만 하면 방법이야 어쨌든 다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의 본성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자연스럽게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 앞에는 마귀가 엎드려 있으며 그의 거짓말이 우리에게 끊임없이 영향을 미치는 환경 속에서 살고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그러므로 상식을 믿어서는 안 된다. 그냥 떠오르는 자기 생각을 순수하고 중립적인 것으로 알아서는 안 된다. 그것은 다 마귀의 영향을 어느 면에서든지 받은 것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계시가 없는 상식과 관념은 다 사탄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일단 경계해야 한다.
가인은 하나님께서 그의 제물을 열납치 않으시자 화를 내었다. 오늘날 종교인들도 그렇게 행동한다. 만일 어떤 사람들이 그들의 열심과 수고를 무시하면 그들은 화를 낸다. "너희만 하나님을 섬기느냐?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냐? 왜 우리 일을 인정하지 않느냐?" 그러나 하나님을 섬기더라도 어떻게 섬기며 어떤 방법으로 섬기느냐 하는 것을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창4:6,7)
많은 사람들이 내가 하나님을 섬기는데 왜 하나님은 나를 받아주시지 않느냐고 화를 낸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에게 "너는 화를 낼 필요가 없다. 너는 죄인이다. 너는 내 방법을 듣지 못했느냐? 너는 왜 내가 낸 길을 따르지 않았느냐?"고 물으신다. 만일 사람이 선을 행하지 않는다면 즉 하나님의 길을 택하지 않는다면 죄(사탄)가 문에 엎드려 있다가 그를 삼키고 말 것이다. 누구든지 그리스도로 행하지 않으면 마귀에게 삼킴을 당하고 말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든지 마귀에게 잡히든지 둘 중의 하나이다. 중간 지대란 없다.
결국 하나님의 길을 거절한 가인은 의도하지 않은 살인을 했다. 그는 결국 분에 못 이겨 동생을 죽이고 말았다. 그리고는 거짓말까지 했다. 그는 동생이 어디 있는지 모른다고 했다.
그는 자기가 사탄과 상관없는 자인 줄로 알았지만 그리고 모든 일을 자기 뜻대로 결정하고 행하는 줄 알았지만 사실은 자기가 철저히 사탄의 조종대로 하고 있으며 사탄에게 사로잡혀서 사탄을 나타내고 있었다는 것이 드러났다. 그는 마귀처럼 살인자가 되었고 거짓말장이가 되었다.
"가인이 그 아우 아벨에게 고하니라 그 후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가로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창4:8,9) 이 말은 자신에게서 나온 말이 아니요 그를 속이는 자(마귀)로부터 나온 것이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요8:44)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기려 하지만 하나님이 정하신 길 곧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기 때문에 가인처럼 하나님이 아니라 마귀를 섬기며 마귀 좇은 일을 하고 만다. 하나님을 참으로 섬기려면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의 길로 가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가인의 실패는 노력과 정성의 부족에서 온 것도 아니고 본성이 특별히 악해서 그런 것도 아니고 오직 자기의 (죄인된) 실상과 형편을 깨닫고 은혜의 길을 추구하지 않은 데서 비롯된 것이다. 그는 아담의 실패가 무엇인지를 몰랐다. 그러니 똑같은 실패를 반복한 것이다. 그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머리를 들고 자기를 나타내는 것이 멸망의 근원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여전히 자기대로 생각하고 자기대로 행동했다. 오늘 우리도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그리스도를 철저히 따르지 않는다면 같은 실패를 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