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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하와의 창조 (1) / 창2:18-25

2010.05.03 14:57

이상봉 조회 수:4139

창2장의 마지막 부분은 하와의 창조와 아담과 하와의 결혼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것은 재미있는 결혼 이야기처럼 보이거나 혹은 별 의미가 없는 역사 기록처럼 보이지만 하나님께서 모세로 하여금 이 사실을 특히 기록하게 하신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처음에 아담 혼자 있었을 때 그에게는 배필이 될 만한 것이 없었으므로 홀로 있어야만 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좋지 못하게 보시고 그에게 하와를 만들어 아내로 주셨다. 그리고 그 둘이 연합하여 동거하게 하셨다. 이것은 별난 이야기가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여기에는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이 드러나 있다. 이 두 사람은 그리스도와 교회를 나타내는 중요한 예표이다.

구약 시대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를 지으신 자는 네 남편이시라"(사54:5)고 하셨다. 사람의 창조자이신 하나님은 사람의 남편이신 것이다. 우주 가운데 절대적 남자는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시다. 우리는 다 하나님 앞에서 여자일 따름이다. 이런 생각은 신약에서 크게 발전되어 드러났다. 주 예수님은 처음부터 자신을 신랑으로 제시하셨다. 그는 사람을 가르쳐 학생으로 만드는 선생이기 보다는 사람에게 자기의 사랑과 생명을 주어서 신부를 만들고 그것을 취하러 온 신랑이기를 원했다. 요한의 제자가 주님께 와서 왜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을 하지 않느냐고 묻자 주님은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뇨?"(마9:14,15)라고 하셨다. 바울은 그리스도는 남편이고 교회는 아내라고 했다.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고후11:2)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아내이다. 창세기 2장에 있는 아담은 그리스도의 예표이고 하와는 오늘 우리 곧 교회의 예표인 것이다. 따라서 창세기 2장에서 아담에게 생긴 모든 일은 다 그리스도의 체험에 해당하는 것이고 하와에게 생긴 모든 일은 다 교회의 체험에 해당하는 일이 될 것이다.

오늘 우리는 창세기 2장 마지막 이야기의 의미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보도록 하자.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은 사람이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 하나님과 연합하여 하나님과 사랑하며 복된 삶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창2장은 하나님께서 이를 위해 세 가지 일을 행하셨음을 보여준다. {첫째}, 사람을 흙으로 만드신 후 거기에 생기를 불어넣으신 것이다. 하나님의 생명, 하나님의 영이 사람 속에 들어가게 하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사람은 단지 동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을 소유한 생령이 되었다. {둘째}, 동산 중앙에 생명나무를 두셔서 그것을 먹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생명을 계속적으로 누릴 수 있도록 하셨다. {셋째}, 아담에게서 하와가 나오게 하신 후 아담으로 하여금 하와와 결혼하게 하심으로써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생명 안에서 연합하여 사는 삶'을 경험하게 하셨다.

이 세 번째 일을 통해 사람과 연합하여 살고 싶다는 하나님의 여망의 표현은 절정에 이르게 된다.



하나님의 영원하신 뜻은 한편으로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취되고 한편으로는 교회를 통해서 성취된다. 교회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성취할 수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하와가 말해 주고 있는 바를 알아야 한다. 그리스도의 사역과 관련하여 교회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는 중요하다. 우리가 하와가 아담에 대해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바로 알게 되면 교회의 위치는 저절로 알게 된다.

창세기에 나오는 여자(하와)는 교회를 상징하고 있는 예표이고 에베소서에 나오는 여자(아내)는 창세기의 여자가 예표하고 있는 교회의 실체이다. 창세기 2:18에서 하나님은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기 때문에 돕는 배필(helpmate)을 지으신다고 했다. 하나님이 교회를 만드신 목적은 교회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배필이 되도록 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이 아담만 지으시고 하와는 짓지 않은 채로 만족하시며 안식하신 것이 아니다. 하와까지 짓고 비로소 안식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하와는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존재가 아니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그리스도 홀로 있는 것은 하나님을 만족시키지 못한다. 하나님의 목적은 로마서 8:29에서 밝히신 바와 같이 그리스도와 함께 교회가 아들(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롬8:29) 그러므로 교회는 반드시 있어야 하며 교회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목적과 깊은 관련이 있다.

하나님의 목적은 승리하신 그리스도에다 승리하는 교회를 함께 가지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마귀를 근본적으로 이기신 그리스도에다 땅 위에서 계속 마귀의 일을 뒤집어엎는 교회를 함께 가지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교회가 그리스도와 함께 우주 가운데서 만물을 다스리게 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교회가 모든 면에서 그리스도와 같이 되기를 요구하신다. 교회는 적당히 괜찮은 존재가 되도록 부름 받은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에게 합당한 배필이 되도록 부름을 받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아담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면 하와가 될 수 없다 ]

아담의 배필을 정하실 때 하나님은 먼저 무엇을 하셨는가?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 아담이 모든 육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창2:19,20)  땅에서 취하여 만들어진 생물로는 아담의 배필이 될 존재가 없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담을 재우신 후 거기서 일부의 생명을 꺼내와서 하와를 만드신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창2:21,22)

반드시 아담에게서 나온 것 만이 아담의 배필이 될 수 있었다. 사람의 생명이 아니면 사람과 함께 연합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 사실은 그리스도에게서 나온 것만이 그리스도와 연합할 신부(교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와가 아담으로부터, 즉 아담의 성분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아담과 하나가 될 수 있었던 것처럼 교회도 그리스도로부터, 즉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리스도와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로부터 나오지 않은 것은 마치 사람에게 있어서 원숭이처럼 비슷하게 보이는 것이라도 결코 교회가 될 수는 없다. 하나님은 독생자만 가지기를 원치 않으시고 그와 함께 많은 아들들을 가지기를 원하셨다. 그러나 그 많은 아들들은 반드시 독생자를 완전히 닮은 것이어야 한다. 그리스도와 일치하지 않는 교회, 아들의 생명에 근거하지 않은 교회는 가짜이다. 교회란 그리스도를 근거로 하나님께서 친히 만드신 '새 사람'이다. 교회는 땅의 것으로 만들어진 사람 단체가 아니다. 교회란 그리스도라는 새 생명의 확대요 충만이다.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엡1:23)

교회는 그리스도 때문에 가치가 있는 것이며 거기서 나왔기 때문에 하나님이 귀하게 보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에 그리스도의 성분은 별로 없고 인간의 성분, 세상 성분이 많다면 그런 교회는 하나님을 만족시킬 수 없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충만하여 그와 참으로 연합할 수 있는 상태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은 안식하실 수 없으시다.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고전10:17)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이 몸은 단지 여러 지체를 함께 모아 놓은 집합체가 아니라 그리스도라는 유기적 생명을 지닌 '한 몸'이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인 것은 그들 안에 있는 한 떡 때문이지 그들의 개성이 일치되거나 이런 저런 다른 이유로 그런 것은 아니다. 교회는 '이씨'와 '김씨'를 합해 놓은 것도 아니요 '이런 나'와 '저런 당신'을 합해 놓은 것도 아니다. 교회는 오직 각 사람 속에 있는 '그리스도를 합해 놓은 것'이다.

그러므로 비록 교회 안에서 활동하는 사람이라도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행하지 않고 자연적 인성으로 행하는 사람은 교회와 상관없는 사람이다. 인간적인 재능과 재간, 생각은 다 교회와는 무관하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저런 유능한 사람들이 주님을 영접하게 되면 그들이 가진 이런 저런 유능한 재주들이 다 주님께 유용하게 쓰일 것이라도 생각한다. 그러나 문제는 내용이 아니고 근원이다. 사람은 '언제나 이것이 좋으냐 나쁘냐' 하는 것을 묻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이것이 어디에서 왔느냐' 하는 것을 물으신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유용하고 좋은 것이면 교회에서도 무조건 좋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예컨대 어떤 사람에게 천부적인 정직성이나 온유함이 있다 해도 그것이 당연히 교회에서 주님을 위하는데 유용하게 쓰이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그것이 십자가를 붙드는데 장애가 될 수도 있으며 그것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죄성과 무능을 보지 못하고 전체적으로 자기를 신뢰하게 만들 수도 있다. 또 어떤 사람에게 말을 잘하는 능력이나 행정 능력 혹은 예리한 지성이 있다 해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곧 바로 주님을 위해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철저히 처리된 것이 아니면 무엇이든지 교회에서는 소용이 없다.

땅에 속한 어떤 좋은 것도 십자가에서 처리되지 않으면 안된다. 어떤 사람은 웅변력이 있는 사람이 구원을 받은 후에 그 웅변의 주제를 바꾸어 복음을 전하거나 설교를 하면 큰 효과를 나타낼 것으로 당연히 생각할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또 훌륭한 가수가 구원을 받은 후 그 재능으로 찬송을 부르면 그 찬송은 하나님을 크게 만족시키고 많은 사람들에게 큰 역사를 일으킬 것으로 생각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교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다 영적 일이라는 사실이다. 영적인 일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으면 안된다. 성령님만이 하나님을 아시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행치 않은 것은 다 하나님께는 소용없는 일이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요6:63)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15:4,5)

다시 말하지만 문제는 사람의 자연적 재능이 얼마나 훌륭한 것이냐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성령의 통제를 받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모든 자연적인 힘은 먼저 십자가에 의해 처리되어야 한다. 그리고 일은 오직 성령의 힘을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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